여말선초의 시대를 살았던 삼봉 정도전(1342~1398, 이하 정도전)과 포은 정몽주(1337~1392, 이하 정몽주), 이 두 사람은 친우이면서 동지였던 관계지만 조선 건국을 두고 서로 대립하게 된다. 정도전은 조선을 설계했고, 왜구를 토벌해 백성들에게 인망을 얻었던 이성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왕조의 수립에 나섰다. 반면 정몽주의 경우 끝까지 고려를 지키고자 했던 충절로, 많은 사람들에게 충신의 대명사로 추앙을 받았다. 역설적이게도 이 두 사람은 모두 이방원에 의해 죽음을 피할 수 없었으니 가혹한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방원(태종, 재위 1400~1418)에 의해 정도전은 역적으로 낙인이 찍힌 뒤 조선왕조 500년 내내 금기에 가까운 이름이었던 반면, 조선의 개국에 끝까지 저항했던 정몽주는 조선왕조 내내 충신의 이름으로 불려 비교가 된다.

용인에 자리한 포은 정몽주의 묘. 조선시대 내내 유학자들의 존경을 받았던 충신의 대명사다.

즉 정몽주가 왕조 수립에 반대했어도, 정몽주가 보여준 충성은 조선의 사대부들도 본받으라는 의미에 다분히 정치적인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정몽주는 조선시대 내내 유학자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용인에 자리한 정몽주의 묘가 왕릉급에 버금갈 정도로 조성된 사실은 흥미롭다. 이와는 반대로 시신의 행방을 알기 어려워 가묘를 세운 정도전의 모습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이 두 사람의 운명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 위화도 회군과 새로운 왕조의 서막

고려 말의 조정은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 출신의 권문세족들이 권력의 핵심에 있었고, 이에 반해 신진사대부들의 힘은 아직까지 권문세족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공민왕의 암살로 인한 정국의 혼란과 우왕 때 벌어진 위화도 회군은 권문세족의 몰락과 함께 고려의 운명을 결정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은 공통의 적이던 권문세족들의 힘을 빼앗아 자신들의 권력 기반으로 삼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과전법으로,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고려가 아닌 새로운 왕조의 수립을 구체화했다. 하지만 신진사대부라고 다 같은 입장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신진사대부들 중 급진파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정도전과 남은, 윤소종, 조준 등이 있었던 반면 온건파의 대표인 정몽주와 이색, 이숭인 등이 대립하고 있었다.

정몽주의 영정. 임고서원에서 볼 수 있다.

정몽주 묘에 자리한 ‘단심가’. 최후의 고려인으로 조선의 개국을 저지하고자 했던 삶의 행적은 ‘단심가’를 통해 알 수 있다.

정몽주의 경우 신진사대부의 일원으로 위화도 회군과 우왕의 폐위에 찬성을 했다. 이러한 찬성의 이면에는 고려를 개혁하는데 있어 권문세족을 제거해야 된다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기에 이때까지는 이성계와 정도전 일파의 뜻이 같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몽주는 권문세족을 제거한 뒤 개혁을 통해 고려왕조를 유지하고자 했던 입장으로 볼 수 있어, 왕 개인에 대한 충성보다 고려에 대한 충성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확실히 정몽주는 급진파들이 역성의 뜻을 구체화하는 시점에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정몽주의 모습도 바로 이 시기의 모습인 셈이다.

정몽주가 피살당한 선죽교. 임고서원에 복제품으로 만들어졌다.

고려왕조를 지키기 위한 정몽주의 노력은 이성계 낙마 사건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황해도 해주를 방문했던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져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정몽주는 재빨리 움직여 정도전과 조준 등의 이성계 일파를 탄핵하고 귀양을 보내며 정국을 장악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성계가 많이 다친 것이 아닌 데다 군사력이 없었던 온건파로서는 한계가 분명했으며, 결국 이성계가 개경으로 돌아오면서 정몽주의 시도는 물거품에 그치고 만다. 이후 정몽주는 이방원과 만난 자리에서 그 유명한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결국 정몽주를 죽이지 않고는 새로운 왕조의 개국이 어렵다고 판단한 이방원은 자신의 심복인 조영규를 보내 정몽주를 ‘선지교(善地橋)’에서 죽이기에 이르렀다. 정몽주의 죽음은 곧 고려를 지탱하고 있던 기둥이 사라진 것과 같았으며, 이후 공양왕의 폐위와 함께 고려는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여담이지만 정몽주가 죽은 자리에서 대나무가 피었다고 해서 다리의 이름은 선지교에서 ‘선죽교(善竹橋)’로 바뀌게 되며, 지금도 선죽교는 개성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중 한 곳이다.

■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한 인물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포은 정몽주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시신은 개경 인근의 임시로 묻혔다가, 이후 복권이 되면서 정몽주의 묘는 이장을 위해 경상북도 영천시에 소재한 임고면으로 향했다. 임고면은 정몽주의 출생지로, 정몽주의 유허비와 정몽주의 위패를 모신 임고서원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정몽주의 시신을 실은 관이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에 이르렀을 때 지금의 묘역 자리가 천하의 명당자리였기에 이곳에 묘를 쓰게 된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형태의 이야기는 현 묘역에 이르렀을 때 관이 움직이지 않자 만장이 떨어진 곳에 묘를 쓴 것이 현재의 묘라는 설이 있다.

정몽주 묘역으로 올라가는 길. ‘경모사’와 ‘모현당’, ‘영모재’가 자리하고 있다.

정몽주의 경우 태종에 의해 복권이 된 뒤,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향교의 배향된 동국 18현 중의 한 사람이 정몽주라는 사실이다. 이를 상징하듯 묘역 역시 일반적인 묘역의 범주를 넘어선 거의 왕릉급에 해당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묘역의 입구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신도비가 세워져 있으며, 홍살문을 지나면 ‘경모사’와 ‘모현당’, ‘영모재’가 자리하고 있다. ‘경모사’의 경우 관리인이 거주하는 곳이며, ‘모현당’은 종중과 관련한 행사, ‘영모재’는 재실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

경북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 자리한 ‘포은 정몽주 유허비’. 효자리가 새겨져 있다.

‘영모재’를 지나면 ‘단심가’와 ‘백로가’ 등이 새겨진 비석이 자리하고 있으며, 지금도 교과서에 실려 있는 ‘단심가’는 정몽주 충절의 대표 격인 시로 손색이 없다. 비석을 지나 정몽주의 묘역을 향해 올라가 보면 좌측에 저헌 이석형(1415~1477)과 정몽주의 증손녀인 영일 정씨의 합장된 묘가 자리하고 있다. 이석형의 묘를 지나면 정몽주의 묘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묘역은 왕릉급에 준하는 큰 규모와 석물을 자랑한다. 당시 정몽주가 어떤 존재였는지 상징적으로 알 수가 있으며, 묘역은 크게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른 봉분을 중심으로 묘를 보호하기 위한 곡장이 설치되었다. 또한 봉분의 앞에는 2개의 상석과 1개의 향로석, 가운데 장명등이 설치되었으며, 좌우에는 망주석 1쌍과 석양 2쌍, 서로 다른 형태의 문인석 2쌍이 자리하고 있다. 가장 눈여겨볼 점은 역시 묘비다. 이 묘비에는 ‘고려수문하시중정몽주지묘(高麗守門下侍中鄭夢周之墓)’가 새겨져 있어, 고려 시대의 관직이 적힌 묘비와 조선시대의 묘제 양식이 부조화를 이루는, 그래서 정몽주의 모습과 가장 잘 어울리는 형태의 묘역인지도 모른다.

임고서원, 정몽주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재미있는 점은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이 훗날 태종으로 즉위하면서 정몽주를 충신의 대명사로 포장했다는 점이다. 조선의 개국에 반대했고, 자신의 손으로 죽였던 정몽주를 충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반면 정도전의 경우 조선을 설계했으며 최초의 조선인으로 그 공이 부족하지 않지만 역적으로 몰려 조선왕조 내내 금기된 이름이었다는 점에서 그 처지가 사뭇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정몽주라는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여말선초의 시대를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몽주의 묘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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