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은 여느 시골과 다름이 없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데, 마을 입구를 들어서면 2개의 신도비가 나란히 서 있다. 이 신도비의 주인공은 잠곡 김육(1580~1658, 이하 김육)과 그의 아들인 귀계 김좌명(1616-1671, 이하 김좌명)이다. 신도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로를 사이에 두고 김육과 김좌명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남양주시 삼패동에 소재한 김육과 그의 아들 김좌명의 신도비

흔히 김육을 떠올리면 ‘대동법’을 생각하게 되는데, 김육은 대동법을 시행하는데 있어 자신의 명운을 걸었던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대동법이 후퇴해서는 안 된다”며 간곡한 당부를 남겼으니 그 노력은 실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이 때문에 효종 역시 김육의 의견을 받아들여 경기도에서 시작된 대동법은 함경도와 평안도를 제외한 전국적으로 확대가 되었으며, 김육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김좌명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대동법의 확산에 기여했다.

■ 평택에 세워진 ‘대동법시행기념비’가 주는 의미는?

이러한 대동법의 흔적은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곳에 세워진 한 비석을 통해 대동법의 의미를 찾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데, 이 비석의 이름은 ‘대동법시행기념비’다. 그렇다면 평택에 ‘대동법시행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우선 ‘대동법시행기념비’는 경기도를 벗어나 호서지방에서 대동법이 확산된 것을 기려 세운 것으로, 당시 삼남의 통로였던 평택에 세웠다.

평택시 소사동에 자리한 ‘대동법시행기념비’

지금이야 평택은 경기도로 인식되지만 조선시대에는 진위현은 경기도로, 평택현은 충청도에 속했다. 따라서 삼남길의 중심에 있던 평택에 비석을 세운 것은 대동법의 확산을 기념한다는 의미에서 좋은 입지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이 비석은 대동법을 시행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담당했던 김육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비석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대동법시행기념비에 새겨진 김육의 이름. 이 비석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대동법시행기념비’는 개혁이란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장소다. 당시 임진왜란을 거치며 중국이나 일본의 왕조 혹은 지배자가 교체되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 조선만은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을 ‘대동법’이라는 창업에 준하는 개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을 정도다.

■ 만능 해결은 아니었던 대동법, 그럼에도 민생을 위한 경세가들의 모습은 잊지 말아야

대동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조선의 조세제도를 이해해야 한다. 당시 조세제도는 ‘조용조’ 제도로 정리할 수 있는데, 토지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조(租)’와 노동력 혹은 노동력이 대신해 제공하는 세금을 용(庸), 마지막으로 호, 즉 백성들에게 공납을 부과하는 조(調)로 구분된다. 지금은 우리가 조세를 화폐로 지불하지만 당시는 화폐 경제가 발달하지 못한 시대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양주시 삼패동에 자리한 김육의 묘. 경세가로서의 그의 삶은 충분히 본받을만하다.

대동법의 핵심은 토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토지 1결당 백미 12두를 내도록 했다는 점과 공납에 있어 특산품이 아닌 백미를 낼 수 있도록 변경함으로써, 중간에서 박쥐처럼 착취하던 방납의 폐해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연이은 참화를 통해 국토가 폐허화되고, 토지에서 얻는 세금만으로는 국가 재정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상대적으로 쉽게 징수할 있는 공납의 비중이 높아졌다. 게다가 공납은 몇 차례 납부하라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악용되었다.

김육의 묘의 반대편에 자리한 김좌명의 묘. 아버지 김육의 유지를 이어 대동법 확산에 기여했다.

본래 공납은 각 지역의 특산품으로 내도록 했는데, 문제는 특산물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결국 중간에서 대납해주는 업자의 배만 불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를 ‘방납’이라고 이름하는데, 방납의 폐해로 백성들은 높은 이자를 부담하게 된다. 또한 방납 업자는 지방의 관아, 중앙 관리로 이어지는 부패 커넥션의 고리로 이어져 있어 백성들은 백성대로 힘들고, 국가는 국가대로 세수가 감소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여전히 우리에게 역사의 교훈을 주는 ‘대동법시행기념비’

이러한 상황에서 대동법의 시행은 공납의 폐해를 극복하는데 목적이 있었기에 백성들에게 환영할 만한 개혁이었다. 물론 여기에 반발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라, 실제 대동법이 시행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한 함경도와 평안도가 대동법에서 제외된 사례에서 보듯 지역마다 쌀보다 특산품을 바치는 것이 효율적인 지역이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대동법이 만능은 아니었다. 다만 대동법을 시행하고자 했던 목적, 즉 민생을 생각했던 경세가들의 모습은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현재를 사는 공직자들은 대동법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봐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어떤 정책이나 결정에 앞서 그 중심에 민생이 가장 앞선다는 것을 김육을 비롯한 경세가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여전히 시대의 가치로 유효하면서 동시에 조세 정의를 비추는 거울의 의미로 ‘대동법시행기념비’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역사의 현장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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