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를 통틀어 제왕들 가운데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인물이 바로 ‘연산군’이다. 왕이었지만 폐위된 까닭에 묘호를 받지 못했던 연산군의 시대에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연산군의 막장 행보는 의외의 문화재를 통해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데, 바로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에 위치한 ‘연산군 시대 금표비’가 그것이다. ‘금표(禁標)’란 일종의 출입 금지의 내용을 새긴 비석으로, 지금도 민간인 출입 금지 지역이 있는 것과 그 형태는 유사하다.

연산군 시대 금표비의 전경. 비석의 앞면에 ‘금표내범입자 논기훼제서율처참(禁標內犯入者 論棄毁制書律處斬)’이 새겨져 있다.

보통의 경우 금표를 세우는 건 능원 혹은 나무를 보호하는 등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연산군 때 세운 이 비석은 사냥터로 쓰기 위해 금표를 설정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기준이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 ‘김감’이 올린 계유문을 통해 ‘사냥과 군사 조련을 위한 데로 식치(食治)하고 수렵하는 장소이므로 모두 국가에서 폐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 목적을 말하고 있다. 즉 목적 자체는 좋은데, 연산군은 군사 조련보다는 사냥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기에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하지 못한 사례로 볼 수 있다.

■ 금표(禁標)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던 연산군

<조선왕조실록>에서 금표에 대한 검색을 해보면 압도적으로 많은 수가 연산군 시대에 집중이 되고 있으며, 대개의 내용이 금표의 확대와 처벌 등에 관한 기사로 등장하고 있다. 당시 바깥에서는 금표를 베푸는 것은 색황, 즉 사냥 때문이라는 비난이 있을 정도로 연산군의 금표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당시 작성된 <연산군일기>를 보면 ▲도성의 사방에 백리를 한계로 금표를 세워 사냥터로 삼았다는 사실 ▲금표비 안으로 무단으로 들어가는 자를 처벌한다는 내용 ▲사냥을 위해 금수를 길렀다는 내용 등을 알 수 있다.

고읍마을로 향하는 입구에서 ‘연산군 시대의 금표비’를 만날 수 있다.

연산군의 폭정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문화재로서 금표비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무분별하게 금표를 확대하다 보니 정작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흩어지고, 도둑이 금표 안에 숨어 잡지 못하는 등 웃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또한 능침이 금표 안에 있다 보니 지키는 관리와 사람이 없어 향화 역시 끊어지는 등 그 부작용이 작지 않았다. 그럼에도 금표 안에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출입을 허용하기는 했는데, 대표적으로 금표 내에 무덤이 있는 경우 2일에 한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또한 월산대군의 집처럼 힘이 있는 사람의 경우 금표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어서 결국 그 피해는 백성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측면에서 바라본 금표비의 모습

반대쪽에서 바라본 모습.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이유로 화강암의 색깔은 황토색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금표 지역이 넓다 보니, 이를 관리하기 위한 인력이 필요했는데, 당시 검찰사들이 수쇄관(搜刷官)과 함께 금표 안의 일을 검찰했으며, 금표 안을 통행하는데 필요한 통행패 1백 개를 만드는 등 행정적인 절차도 함께 이루어졌다. 또한 각 지역의 금표를 표시한 지도가 연산군에게 올려지는 등 연산군 시대의 금표는 백성들의 피눈물 위에 세워진 연산군의 폭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연산군 시대의 금표비, 연산군의 폭정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문화재

이처럼 연산군이 세웠던 금표는 부정적으로 인식이 되다 보니, 후대의 왕들에게 행해서는 안 될 교훈으로 인식이 되었다. 이후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던 중종은 연산군이 세운 금표를 파괴하거나 땅에 묻어버려 그간 금표비에 대한 실체를 알기가 어려웠다. 이런 가운데 발견된 것이 바로 고양시 대자동에서 확인된 ‘연산군 시대 금표비’다. 고읍마을의 입구이자 금천군 묘 가까이에 세워진 금표비는 인근의 금천군 묘역의 보수공사 과정에서 발견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소재한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 왕이었지만 폐위된 이유로 묘호를 받지 못해 초라한 묘역으로 조성이 되었다.

재질이 화강암인 비석의 앞면에는 ‘금표내범입자 논기훼제서율처참(禁標內犯入者 論棄毁制書律處斬)’이 새겨져 있는데, 금표 안을 무단으로 들어온 자는 ‘기훼제서율’로 처형한다는 내용이다. 연산군 때 세워졌다 해서 연산군 시대 금표비로 명명이 되었으며, 지금은 경기도문화재자료 제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때문일까? 연산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온령군의 후손들이 종중 땅에 있는 세워진 금표비의 이전을 요구한 적이 있는데, 이는 여전히 비석에 담긴 의미가 작지 않음을 의미한다.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연산군의 시대의 폭정을 가늠해볼 수 있는 문화재라는 측면에서 ‘연산군 시대의 금표비’는 충분히 의미가 있고, 보존해야 할 역사의 문화재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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