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753년 전, 영국에서 시몽 드 몽포르(Simon de Montfort· 1208~1265년, 프랑스 출신)가 새로운 정치실험으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시작한 이래, 많은 나라들이 이를 받아들였고 때로는 피를 흘려 발전시켜 왔다. 이것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국민의 대표가 국정을 책임진다는 가치개념을 세계인들이 모두 공감하고 공유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 없이 해방 후에 대의 민주제도를 받아들였고, 4·19혁명, 6·10민주항쟁 등 시민들이 독재정권과 피 흘리는 투쟁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선배들의 이런 노고의 결과로 앞으로 40여일 후, 6월에는 또 다시 시민이 주권행사를 하는 지방선거를 치르게 되어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많은 시민들은 큰 기대와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이제까지 지역 정치인들이 보여준 행태 때문이다.

신뢰감이 떨어지는 추상적 구호성의 현수막 정치, 유력 정치인과의 친분을 과시하여 마케팅 하는 후광(後光)정치, 그리고 정쟁과 정략이 난무하는 정치현실에 이제는 신물이 난다. 그러나 이런 정치문화가 형성된 책임의 일부분은 유권자인 시민에게도 있다. 이런 잘못된 행태를 이제까지 용인해 왔기 때문이다. 사적인 이익이나 학연·지연에 얽매여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인 선거를 통해서 이런 부정적인 정치행태를 제거하지 못한 탓이다. 유권자들의 각성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워야만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다.

정치인들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지역 주민들이 먹고 살아야 할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도 없이 권력만 향유(享有)하려는 생각을 가진 정치인은 필요가 없다. 적어도 공직에 출마하려면 자기의 소신과 철학을 기반으로 한 지역발전에 대한 비전과 특히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미래 핵심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연구·개발하여 이를 공약으로 제시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정치인은 미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략(政略)이 아니라 정책(政策)으로 승부하여야 한다.

권력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이것을 잘 쓰면 유용한 도구로서 시민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지만, 이를 잘 못쓰면 흉기가 되어 세금만 낭비하고 시민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선거를 통해서 권력이라는 칼을 선용(善用)할 수 있는 능력 있고 양심적인 정치인을 찾아 선택하는 분별력은 시민의 몫이다. 그 선택의 지표가 바로 그들이 제시하는 공약(公約)으로서의 정책(政策) 내용이다.

지방의 지역정책은 국가정책과는 달리 그 지역의 특성(인문학적·지정학적 특색)을 반영한 차별화된 지역맞춤형 정책이어야 한다. 이것은 시민들의 창의적인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고 활발한 토론과 소통, 그리고 해당분야 전문가 그룹의 자문 등을 받아 성안(成案)하는 주민 밀착형의 과정(過程)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보아온 지역정치인들의 정책능력은 부족할 뿐 아니라 관심도 역시 많이 떨어진다. 정책 공부는 뒷전이고 표를 의식해 행사에만 열심히 쫓아다니는 안타까운 모습들이었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자치(지방)분권을 강화하는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관련 법률이 개정될 경우, 지방의 권한과 예산이 커지는 시대가 오고, 아울러 기초 자치단체 즉 작은 단위의 생활정치 권역이 활성화되면서 시민들의 참여적 민주주의의 욕구가 커져갈 것이고, 그들의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나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수년전부터 시민운동으로서 시민들이 직접 지역발전정책을 만들어 수차 지역정치인들에게 제안하고 또한 시민과 함께 토론하고 소통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참석을 요청하였으나, 대부분의 여야 정치인 모두가 무응답으로 응답하는 경험을 하였다. 이런 현상은 지역 정치인들이 민주(民主)라고 하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몰라서 시민들을 무시(無視)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역정책에 무지(無知)한 탓인지 모르겠다. 두 가지 경우가 다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이것이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지역정치수준이라고 이해하기로 하였다. 이런 정치인들은 앞으로 정치적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대비해서도 직접 민주주의의 한 방식으로서 시민이 스스로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발전에 관한 정책’을 개발하고, 공약에 반영시키고자 제안하고 있으나 얼마나 수용될지 그 결과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이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후보자들 간에 정략보다는 건전한 정책 경쟁을 하는 올바른 정치문화로 변화·개혁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이 일을 정치인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의식 있는 시민들이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치인 스스로가 자신들을 개혁한 사례를 우리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시민혁명과 4·19혁명 등의 역사적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즉 이제까지 정치풍토의 변화와 개혁은 언제나 시민들이 힘겹게 이끌어 왔다.

이번 6월 지방선거는 지역정치인들과 시민들이 함께 우리 후손들에게 희망이라는 유산을 물려주기 위하여 자기혁신의 노력을 경주하여 한 단계 성숙한 선거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바람은 현실정치의 매커니즘(machanism)을 모르는 순진한 발상에서 나온 것 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포함한 인류의 역사는 원칙과 정의에 의해서만 느리지만 조금씩 발전해 간다고 굳게 믿고 있다. 때로는 역사가 잠시 후퇴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계속 전진해 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전진하는 인류의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막을 수 없다.

김귀근(오산지역정책시민연합 상임대표)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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