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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나라에서 숨쉬며 살기 “참 어렵다”
이소영 기자 | 승인 2018.05.10 20:04

대학 시절 대형마트에서 캐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마트에서는 장바구니를 가져오면 개당 50원(최대 3개까지, 총 150원) 할인을 해줬다. 크고 작은 물건들 사이로 장바구니를 챙겨온 엄마들은 자신 있게 외쳤다. “장바구니요!” 그 말인즉슨 알아서 할인해달라는 거였다. 종종 어떤 엄마들은 3개를 가져왔는데 2개 혹은 1개만 할인해줬다며, 영수증을 들고 항의하는 경우가 있었다. 장바구니 개수가 틀리면 당황스러웠다. 사무실에 계산원의 오타율과 계산 속도를 측정한 종이가 붙여졌기 때문이다.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고 나선 “장바구니요”라는 말에 “네. ×개 가져오셨죠?”라고 맞받아쳤다. 내가 말한 개수가 틀리면 상대방이 정정해줘서 수월했다. 실수하면 곤란해지는 캐셔 업무 중 ‘장바구니 할인’은 은근히 귀찮은 일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들을 이해하게 됐다. 집안 대소사로 신경쓸 게 많은 엄마들이 장바구니를 가져오는 건 ‘환경’을 챙기겠단 의미도 담겨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환경에 귀 기울이게 된 건 아이의 존재를 알고 난 후부터였다. 임신했을 땐 전자파만 신경 썼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범주가 넓어졌다. 특히 플라스틱에 시선이 멈추곤 했다. 흔하디흔한 장난감은 물론 갓 태어난 아이가 입을 대고 마시는 젖병부터 젖을 주기 위해 쓰는 유축기까지 플라스틱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아닌가. 아이에게 젖병을 물릴 때마다 불안했다. 발육 단계에 있는 아이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을까 하고. 플라스틱이 엄마의 생활은 물론 아이 생활까지 점령하고 있었다니 새삼 놀라웠다. 역시 사람은 자각하지 않는 한 발견이 어려운 법이다. 하다못해 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 위를 둘러봐도 타자기부터 작은 시계, 이어폰, 모니터까지 그야말로 플라스틱 세상이다. 물론 집밖을 나가면 더 어마어마하다. 강남역에만 나가도 일회용 커피잔이 역 앞에 수북이 버려져 있다.

중국 정부는 올초부터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중국 수출길이 막히자 폐비닐·폐플라스틱 수거 대란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플라스틱 적게 사용하기뿐이었다.

▲음식 주문할 때 일회용 포장 용기를 거부하고 스테인레스 포장 용기 챙겨서 담아오기 ▲비닐봉지나 종이봉투 대신 장바구니 챙기기 ▲텀블러 사용하기 ▲플라스틱 용기 처분하기

이게 가장 첫 번째로 시도한 방법이었는데 꽤 귀찮은 일이었다. 챙겨온 포장 용기를 들고 부탁조로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가 이거 가져왔거든요? 여기에 주세요”라고. 장을 볼 때는 물건이 이미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어서 아쉬울 때도 많았다. 집에 와서 장 봐온 걸 풀면 물건을 사려고 플라스틱을 버리는 셈이어서 차라리 처음에 살 때 부탁하는 편이 나중을 위해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텀블러는 습관을 기르는 중인데, 유리는 깨질 위험이 있어 신소재 트라이탄을 이용한다.

‘연대의 힘은 강하다’는 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온·오프라인에는 제로 플라스틱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보고 따라 해 보기도 했다. 한 지인은 택배를 주문할 때 배송 메시지에 ‘에어캡을 사용하지 말고 신문지나 종이로 싸서 보내달라’고 기재한다고 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고 덧붙이면, 그래도 몇몇 업체는 꼼꼼하게 종이나 신문지에 포장해서 보내준다고 했다.

외국에서는 플라스틱 내쫓기 프로젝트를 한 가족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산트라 크라우트바슐과 페터 라벤슈타이너. 이들이 정한 프로젝트의 규칙은 ‘플라스틱이 들어 있지 않은 물건만 구입하기’였다. 크라우트바슐은 장을 볼 때 알루미늄이나 양철로 된 그릇을 가져가서 그 안에 소시지나 치즈를 넣었다. 그런 그릇이 없으면 점원에게 종이에 싸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이상한 눈으로 보거나 위생적인 이유를 들며 색안경을 끼던 사람들이 도리어 나중에는 그 가족을 응원하게 됐다. 심지어 지금은 그들의 블로그에서 하나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어떻게 하면 플라스틱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는지 정보를 교환한다고 한다.

플라스틱 속의 p-노닐페놀, 비스페놀A는 여아의 성조숙증은 물론 유방암 증가, 정자 수 감소까지 일으킨다. 그리고 이보다도 더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나는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전문 활동가도 아니고, 친환경적 생활에 대한 소양도 없다. 다양한 고분자 물질을 공부해 플라스틱 전문가가 될 자신도 없고 지자체를 압박하고 사업체와 기관을 설득할 에너지도 없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사용할 수밖에 없는 모순덩어리다. 그러나 익숙한 패턴을 조금씩 바꾸고 그걸 유지하며 살려고 애쓴다. 내가 살아갈 지구가, 내 아이가 살아갈 지구가 전보단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플라스틱 대국(大國)’인 ‘플라스틱 코리아’ 정부는 과연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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