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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수원 화성 성곽의 4가지 보물은?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8.05.15 14:55

지금의 수원시를 상징하고 있는 수원 화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현재 사적 3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은 대부분 복원을 거친 모습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훼손을 피하지 못했다. 100년 전 조선총독부의 주관 아래 발행된 <조선고적도보>에는 수원 화성의 모습이 비교적 상세히 남아있는데, 이때만 해도 장안문을 비롯한 동북공심돈, 동장대 등의 원형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원 화성은 극심한 파괴를 겪게 되는데,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 바로 장안문이다. 당시 장안문은 포탄으로 인한 피해로 누각의 1/3이 훼손되는 피해를 겪었고, 결국 이듬해 장안문의 누각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수원 화성의 성벽. 원형과 복원의 부조화를 경험할 수 있다.

당시 동북공심돈을 비롯해 창룡문 등 수원 화성의 성곽이 결정적으로 훼손이 되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수원 화성의 대부분은 복원된 성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최초 수원 화성이 복원된 문화재라는 이유로 유네스코에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에 난색을 표시했다는 점이다. 이때 이를 뒤집었던 것이 바로 <화성성역의궤>로, 조선의 충실했던 기록 문화가 수원 화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수원 화성은 사적 3호인 동시에 옛 모습을 간직한 시설물은 별도로 보물로 지정이 되었는데, 오늘은 수원 화성에 남겨진 4가지 보물을 통해 수원 화성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 수원 화성의 남쪽이자 원형을 간직한 팔달문

수원 화성의 남쪽에 해당하는 팔달문은 장안문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2층 누각과 함께 옹성 형태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한때 팔달문 동종이 위치했던 곳이자, 수원 화성에 도착한 정조가 아버지가 묻힌 현륭원을 전배하러 갈 때 통과했던 문이다. 한양도성의 경우 정문 격인 숭례문이 남문인데 비해, 수원 화성의 경우 정조가 수원 화성으로 입성했던 장안문을 정문으로 보고 있다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정조는 이곳을 통해 현륭원으로 행차를 했다.

팔달문은 모든 길이 사통팔달 열린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은 숭례문처럼 좌, 우 성벽이 분리된 채 단절된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수원 화성의 유일한 미복원 구간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조선고적도보>에 남겨진 사진을 보면 당시만 해도 성벽이 온전히 남아 있었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며 훼손이 되고, 이후 수원의 발전과 함께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222년 전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현재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어 있다. 팔달문 내부에는 공사에 참여한 이들의 기록을 남긴 ‘공사실명판’이 남아있는데, 지금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 수원시의 상징인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수원 화성의 서쪽에 해당하는 화서문은 팔달문과 함께 당대의 원형을 간직한 성문으로 현재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안문이나 팔달문과 달리 규모는 작은 편이다. 1층 문루와 홍예문의 넓이를 통해 크기를 비교할 수 있으며, 반원형의 옹성 구조를 보이고 있다. 화서문의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번암 채제공(1720~1799)의 글씨로, 화서문의 내부에도 ‘공사실명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어 기록 문화에 충실했던 조선의 단면을 볼 수 있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축성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화서문의 현판. 번암 채제공의 글씨다.
화서문 내에 기록된 공사실명판. 조선의 충실했던 기록 문화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서북공심돈. 이곳을 방문했던 정조는 처음으로 만들어진 이 건축물 앞에서 ‘마음껏 구경하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화서문과 함께 자리한 서북공심돈(보물 제1710호) 역시 축성된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건물로, 군사적인 측면에서 망루의 역할을 했다. 현재 수원 화성에는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 두 곳이 남아있는데, 외형은 돌출된 성벽 위로 벽돌을 쌓아 올린 모습이다. 서북공심돈의 내부 구조를 보면 3층으로 되어 있는데, 내부가 소라의 형태를 닮았다 해서 ‘소라각’으로 불린다. 이 같은 축성 방식은 국내의 성곽 중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찾은 현장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면서 ‘마음껏 구경하라’며 자부심을 드러낸 바 있다.

■ ‘용두각’으로 불린 수원 화성의 보물, 방화수류정

수원 화성에는 총 4곳의 각루가 있는데, 이 가운데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수원 화성의 백미로 꼽히는 곳이 바로 ‘방화수류정’이다. 수원 화성의 동북쪽에 있어 ‘동북각루’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방화수류정은 수원 사람들은 ‘용두각’이라 불렀다. 방화수류는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라는 뜻으로, 실제 방화수류정에 오르면 버드나무가 핀 용연을 비롯해 수원천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방화수류정을 방문한 정조는 이곳에서 활을 쏘기도 했으며, 특이하게 일반 건축물이 팔각지붕인데 비해 방화수류정은 십육각으로 되어 있다.

화홍문을 지나 마주할 수 있는 방화수류정의 모습. 일반적인 건축물과 달리 지붕이 십육각으로 되어 있다.
용연에서 바라본 방화수류정의 모습. 낮과 밤의 느낌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방화수류정의 모습이다.

때문에 바라보는 장소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고 있으며, 마치 용의 머리처럼 돌출된 모습을 볼 수 있어 신비감을 더해준다. 지금은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는 정자의 기능으로 알고 있지만, 전쟁 때는 망루의 역할을 했던 방화수류정은 현재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1709호로 지정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최초 수원 지역의 3.1운동이 시작된 곳이 방화수류정이라는 점에서 한 장소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이처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3호로 지정된 수원 화성은 그 자체로 성곽 예술의 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축성 당시의 원형을 간직한 4곳의 보물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의미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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