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6일 새벽 당일 예정돼 있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명목상으로는 ‘맥스선더’ 한미연합공중훈련과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가 국회에서 자신들의 존엄을 건드린 국회간담회를 꼬투리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미국에 대한 압박의 차원으로 해석된다.

같은 날 김계관 외무상 부상이 담화를 발표해 북한의 ‘선 핵포기, 후 보상’을 뜻하는 ‘리비아 핵폐기 방식’이나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넘어 생화학무기 폐기와 북한의 인권문제까지 거론되는 등 미국의 매파들의 공세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냄으로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세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쇄 계획,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 대한 접견, 미국인 인질의 석방 등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해왔던 북한을 존볼튼 등 미국의 매파들이 북한의 체제보장에 대한 신호는 없이 일방적인 핵 폐기만을 주장하는 등 코너로만 몰아가는 것에 대한 경고의 측면이 강하다.

스텔스 기능을 갖춘 최첨단 F-22 랩터 전투기를 8대나 동원하는 등 전보다 더욱 강도 높은 ‘맥스선더’ 훈련을 진행하는 미국과 한국에 배신감을 느꼈음직도 하다. 판문점선언에서 종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했던 약속을 고려하면 한미 당국의 신중하지 못한 처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협상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또한 현실적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 체제보장’을 동시에 추구할 때만이 양측이 합의에 이를 수 있음을 고려할 때 불필요하게 서로를 자극하는 발언과 시도는 자제돼야 함이 마땅하다.

홍준표 대표가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PVID(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고 비핵화 후 보상·체제보장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 CIA, 국무성, 의회에 전달할 것이라는 발표는 사실상 남북, 북미간 협상을 깨자는 말과 다름없다.

북한의 비핵화가 완료된 후에야 이에 대한 보상과 종전선언,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체제를 보장해 주자는 주장은 실패 없이 확실한 방안인 듯 하지만 전혀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북미간 서로 역지사지하는 자세 없이 오직 압박과 강제만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이러한 협박자세는 회담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홍 대표와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분단과 맹목적인 반북의식을 이용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얄팍한 생각이라면 앞으로도 보수의 미래는 없다. 촛불혁명이나 정권교체, 판문점회담 등을 통해 국민들의 의식은 높아졌고 시대착오적인 냉전보수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있다.

우리 사회나 미국은 전쟁의 위기 속에서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위태롭게 할 미숙한 처신에 대해 유의하면서 남북 및 북미간 고질적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이룰 민족사적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

북한도 지난 11일부터 이미 시작된 연례적인 맥스선더 훈련을 이유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무기한 연기시키고 북미간 정상회담을 위태롭게 하는 언행을 더 이상 진행해서는 안된다. 철지난 이념에 휩싸여 군사적 긴장완화를 두려워하고 강경 일변도로 나가려는 남북미 매파들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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