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황신자 선생님을 찾는 김소라 씨가 맞나요? 맞는다면 제가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연락 주세요.”

어느 날 한 통의 문자가 왔다. 1985년도 서울 옥정초등학교 2학년 3반 담임 선생님이셨던 황신자 선생님을 오래토록 찾고 싶었다. 수필공모에 글을 쓰기도 하고 나의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에 글을 올린 적도 있다. 오랫동안 아무런 연락이나 소식이 없어서 마음을 접었다. 내 마음속의 엄마 같은 선생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통틀어 가장 만나고 싶은 단 한 분. 황신자 선생님.

그런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문자를 받았고,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과연 누구길래 황신자 선생님을 찾는 나에게 연락을 주신 걸까. 궁금한 마음에 답장을 보냈다. “네 제가 김소라 맞습니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을 꼭 찾고 싶은데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기억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어떤 관계신가요?”라고 썼다. 그랬더니 “저는 황신자 선생님의 장남 오수학입니다”라고 하신다. 전화를 걸어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이미 선생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6년 전 70대 초반의 나이에 암 투병을 하다 돌아가셨다. 우연히 황신자 선생님의 장남 오수학 씨가 네이버 블로그에서 내가 쓴 글을 보고 기쁜 마음에 연락을 주신 거였다. 누군가가 알려준 어머니의 제자에 관한 소식에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내게 황신자 선생님은 어두운 시절 빛과 같은 분이었다. 그리고 가슴 속에 영원한 선생님으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구두 공장과 살림집이 함께 연결된 반지하 단칸방에 살았는데 그날 집에 불이 났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엄마는 더운 초여름 밤 씻기 위해 물을 데웠다. 집 안에 욕실도 화장실도 없었다. 용변을 보기 위해서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야 했고, 세수하거나 이닦는 것도 밖으로 나가 부엌에서 해야 했다. 냉장고나 가스렌지도 없었다. 밥을 할 때에도 목욕을 할 때에도 석유곤로를 사용했다. 그날 엄마는 석유곤로에 물을 끓여 몸을 씻고 피곤한 하루를 끝내려 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석유 곤로가 넘어져 불이 번졌고, 엄마의 몸에도 옮겨 붙었다. 뜨겁게 타들어갈 것 같은 불길과 연기 속에서 엄마는 아빠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리고 앰뷸런스에 두 분은 실려갔다. 잠에서 깬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앰뷸런스를 탔다. 속옷만 입고 실신한 엄마 모습을 보고, “엄마, 엄마” 소리치면서 울었던 것이 엄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며칠 뒤 큰이모네 집에서 장례식이 있었고 관 속에 누워 있는 엄마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니 누구도 나에게 관 뚜껑을 열어 엄마를 보여주지 않았다. 아홉 살 나이에 처음 맞이한 누군가의 죽음이 엄마였다. 검은색 나무로 된 관이었는데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엄마였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날부터 나는 엄마 없는 아이가 되었다. 학교에서도 조용하고 말없이 우울한 모습으로 지내야만 했다. 세상의 빛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더 이상 나에게 따뜻하고 친근한 목소리로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숫자 계산을 잘 한다고, 구구단을 잘 외운다고, 책을 잘 읽는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어졌다. 그러한 내게 황신자 선생님은 엄마가 되어 주셨다.

어느 날 황신자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남으라고 하셨다. 버스를 타고 가까운 시장에 가서 원피스를 사주셨다. 노란 원피스와 흰색 블라우스였다. 땟국물에 절어 꾀죄죄한 차림으로 다녔던 나는 선생님이 사주신 노란 원피스를 입고 행복했다. 선생님이 왜 옷을 사주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둘이 시장을 가면서 어떤 말을 나누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가끔 선생님을 부를 때 “엄마!”라고 불렀던 것, 그래서 당황해했던 내 모습이 문득 기억날 뿐이다. 황신자 선생님은 1학기와 2학기 통지표에 “김소라 어린이는 글짓기에 재능이 있으며, 학업에 대한 열의가 있고 성실합니다”라고 써 주시기도 했다. 단정하고 반듯한 선생님의 글씨에서 나를 향한 진심어린 사랑과 격려가 담겨져 있었다.

시간이 훌쩍 흘렀다. 아홉 살 아이는 마흔이 넘은 엄마가 되었다. 기억 속에 자취를 감추었던 일이 되살아났다. 아이를 키우면서 만나온 수많은 선생님을 통해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이 누구인지 기억하게 되었다. 바로 황신자 선생님. 선생님은 두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큰 아들은 대학 교수이고, 작은 아들은 의사다. 훌륭한 엄마이자 진정한 선생으로 평생 살았던 분이다.

좀 더 선생님을 빨리 찾는 노력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크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단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고, “감사합니다. 정말 선생님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라고 말을 했더라면... 2018년 스승의 날이다. 선생은 넘치나 진짜 참 스승은 사라져가는 이 시대 나는 행운아라 생각한다. 내 인생 단 한 명의 위대한 선생님을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할 수 있기 때문에. 조만간 황신자 선생님의 자녀분들과 함께 조우할 생각에 가슴이 뛴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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