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이가 폐렴에 걸려 일주일간 입원을 했다. 늦은 오후,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제가 퇴근 후 병실에 들를까요?” ‘예의상’인지 ‘어린이집 매뉴얼’에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딱 잘라 거절했다. “선생님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사셔야죠.” 겸연쩍어하셨지만 수화기 너머로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물론 마음이야 감사했다. 그렇지만 종일 아이들과 땀 흘리며 고군분투했을 선생님에게 병문안은 ‘야근’이 아닐까 싶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이달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상시 노동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주당 40시간 근무에 더해 시간외근무 12시간을 넘지 못한다. 주당 최대 법정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였으니 생각보다 변화 폭이 크다.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된 2004년 이후 최대 변화다.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사람이 사람답게 느끼게 해 줄 문화와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우선 소리 높여 환영한다. 필자가 ‘월화수목금금금’ 주말이 없는 육아를 2년가량 해오면서, ‘휴식’ 그리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인간에게 있어 ‘생존권’을 넘어 ‘존엄’의 문제까지 연결된다고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분위기도 그런 모양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김영주 장관도 근로시간 단축은 피할 수 없는 우리 시대 과제임을 인정했다.

시행 이후 그렇다할 변화가 있을까. 한 대기업 직원은 직원들끼리 회식을 꺼리는 ‘목소리’도 낼 수 있고(그동안은 ‘일의 연장’ 차원에서 싫어도 갔으리라) 저마다 ‘헬스장’, ‘영어학원’ 등을 끊는 사람도 늘었다고 했다. 미리 주52시간을 도입해 다양한 시도를 한 기업도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주 52시간이 가까워오면 부서장에게 경고 알람을 띄운다. 한 달 단위로 선택적 근로시간제도 사용할 수 있다. 한 달 평균이 주 52시간을 넘지 않으면 좀 더 일한 주가 있어도 상관없다. 신세계백화점은 특정 시간에 집중적으로 일하는 집중근무제를 도입했다. LG전자는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자는 차원에서 통근버스 시간을 20분 당겼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이런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일부 대기업만 자체적인 준비를 거쳐 적응 중에 있다. 대다수 중견 기업은 노동 시간 단축에 따른 ‘대응’과 ‘세부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당·정·청도 그렇다. 단속과 처벌에 있어서 ‘6개월 유예’를 결정했지만, 고용부는 무조건적 유예는 거부했다. 근로시간 단축 의미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오히려 근로감독관 600명을 추가 채용해 강력하게 감독을 하겠다고 했다. 지키지 않으면 위법이고 불법이라는 것이다.

여권 내 혼선이 빚어지는데, 현장이라고 안 그럴 리가 없다. 한 중견업체는 오전과 오후에 30분씩 휴식시간을 넣어 근로시간을 맞추는 식으로 꼼수를 부렸다고 한다. 상시 노동자를 300인 이하로 줄인다는 곳도 있다. 뿐만 아니다. 퇴근시간을 강제하니 카페에서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수당 등 월급이 줄어들어 생계를 위해 투잡에 나서야 하는 이들도 있다. 근로시간 단축의 취지와 다르게 ‘명과 암’이 공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각각 ‘직업’, ‘직종’, ‘고용형태’ 등에 따라 업무조건과 환경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노동자 300인 이상’, ‘52시간’은 도리어 기업과 노동자에게 ‘족쇄’처럼 다가올 수 있다. 이런 다양성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시행을 한다면, ‘저녁이 있는 삶’을 모두가 온전하게 누릴 수 있을까. 어쩌면 주52시간이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있다. 부작용을 줄이면서 적응해나가는 것. 각각 주어진 상황 안에서 만족해나가면서 매뉴얼과 지침을 만들어나가는 것. 이게 노동정책을 만드는데 있어 우선이 아닐까.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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