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를 이야기할 때 승자의 입장에서 쓰인 시각이라 평한다. 승자의 경우 기록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남길 수 있었던 반면 패자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지 못한 채 도적 혹은 반란이라는 이름으로 평가절하 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패배한 역사를 조명하는 것도 역사의 균형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패배하고 잊힌 역사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왕자의 난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정작 이 여파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의안대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명품 사극으로 손꼽히는 <정도전>에서도 왕자의 난을 다룬 바 있고, 세자인 의안대군의 죽음을 그리기도 했다. 이처럼 의안대군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치 구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왕자의 난은 왜 발생했는가? 복잡하고 미묘한 정치 구도

표면적으로 보자면 정몽주의 죽음과 함께 고려는 사실상 멸망하고, 이성계가 1392년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르게 된다. 당시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고려의 국호를 사용했지만, 성씨가 바뀐 것이니 사실상 새로운 나라와 다름이 없었다. 다만 국제질서로 보면 조선과 명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한 데다, 이성계의 즉위는 명나라의 승인을 얻지 못한 상태였기에 외교상으로 왕호를 쓸 수가 없었고, ‘고려권지국사(高麗權知國事)’ 즉 임시로 나라를 다스리는 어정쩡한 위치였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나라 조선이 건국되고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세자 책봉 문제는 화두로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이 세자 책봉의 문제는 훗날 왕자의 난을 부르게 되는 원인 제공을 했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의 중요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전면에서 바라본 건원릉. 태조 이성계의 능이다.

헌릉.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능으로, 이방원의 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본래 이성계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본처인 신의왕후 한씨(1337~1391)와 후처인 신덕왕후 강씨(?~1396)다. 신의왕후의 경우 조선이 건국되기 전 세상을 떠났는데, 이성계와의 사이에서 맏아들인 진안대군(1354~1393)을 비롯해 영안대군(정종 재위 1398~1400), 정안대군(이방원, 태종 재위 1400~1418) 등 5남 2녀를 낳았다. 반면 신덕왕후의 경우 이성계와의 사이에서 의안대군(이방석, 1382~1398)을 비롯해 2남 1녀를 두었다. 따라서 의안대군(=이방석)과 정안대군(=이방원)은 어머니가 다른 이복형제였다. 당시 세자 책봉의 가장 유력한 후보는 이성계의 맏아들 진안대군이었다. 하지만 진안대군은 자신의 지위를 버린 채, 고려의 충신으로 남는 결정을 하면서 세자 책봉의 문제는 이내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진안대군의 세자 지위 포기는 다른 말로 이성계의 아들이라면 누구나 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신덕왕후 역시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되었으면 했다는 점에서 여느 여인과 다르지 않았다.

■ 정릉의 병풍석이 청계천 광통교에 자리한 이유는?

결국 신덕왕후의 아들인 의안대군이 세자로 책봉이 되면서 신의왕후 소생의 대군들은 크게 반발하게 되는데, 이 가운데서도 가장 분노했던 이가 정안대군이다. 사실 공적으로 따지자면 정안대군이 세자가 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정치라는 것이 뜻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고 했던 신덕왕후의 욕심은 ‘왕자의 난’의 빌미로 작용하게 되고, 결국 의안대군은 조선의 첫 세자였지만, 비극적인 죽음을 피하지 못하게 된다.

청계천 광통교의 모습

광통교에서 정릉의 병풍석과 석재를 볼 수 있다. 계모를 향한 정안대군의 분노를 상징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문인석에서 바라본 의안대군의 묘. 앞쪽은 세자빈 심씨의 봉분이며 뒤쪽은 의안대군의 봉분이다.

의안대군의 묘. 조선의 첫 세자였음에도 너무 초라한 묘역이다.

배면에서 바라본 의안대군 묘의 전경

당시 신덕왕후를 향한 정안대군(=태종)의 분노를 상징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청계천 광통교다. 본래 신덕왕후의 ‘정릉(貞陵)’은 지금의 정동에 있었는데, 태종은 왕위에 오른 뒤 능을 지금의 성북구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정릉의 병풍석을 비롯한 석재를 광통교의 보수 공사에 사용하게 했는데, 이 때문에 정릉의 능침은 초라하게 변했고, 광통교 아래에 정릉의 병풍석과 석재가 자리하게 된 배경이다.

현재 의안대군의 묘는 경기도 광주시에 소재하고 있는데, 주차장에서 의안대군의 묘까지는 대략 800m 정도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 막상 묘역과 마주하면 이곳이 정말 조선의 첫 세자의 묘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작고 왜소하다. 의안대군 묘의 외형을 살펴보면 크게 두 기의 봉분이 상하로 조성이 되어 있는데, 앞쪽은 세자빈 심씨, 뒤쪽은 의안대군의 봉분이 자리하고 있다. 각각의 봉분에는 묘표가 자리하고 있으며, 묘역의 뒤쪽에는 산신석이 자리하고 있다. 석물은 세자빈 심씨의 봉분 앞에 상석과 향로석이 자리하고 있으며, 봉분의 좌우에는 문인석 2쌍이 세워져 있다.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166로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초라한 묘역이지만 이곳에 담긴 역사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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