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장헌세자, 추존 장조)의 현륭원이 수원부의 읍치인 화산으로 천봉이 되면서, 새로운 신도시로서의 수원 화성이 축성되는 배경이 되었다. 지금도 수원을 대표하고 있는 수원 화성은 성벽을 품은 도심 속을 걸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력적인 도시다. 그런데 수원 화성의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많은 양의 석재가 사용되었다는 것과 함께 성벽 안에 남겨진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성벽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흔적 중 하나가 바로 쐐기 자국이다.

수원 화성의 성벽에 남겨진 쐐기 자국

팔달산 채석장. 팔달산 고인돌에서 서남각루로 오르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숙지산 채석장. 선명한 쐐기 자국

수원 화성의 성벽은 팔달산과 숙지산, 여기산 등 인근의 채석장에서 석재를 캐서 사용한 것으로, 지금도 이들 산에는 채석장의 흔적, 즉 쐐기 자국이 남아 있다. 여기서 석재를 캐는 과정을 살펴보면 성벽에 사용할 돌에 쐐기 자국을 내고, 크기에 맞는 나뭇조각을 꽂아둔다. 여기에 물을 붓기를 반복하면, 나무의 팽창에 의해 돌이 갈라지고, 이 돌을 옮겨 수원 화성의 성벽으로 활용했다. 또한 수원 화성은 축성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팔달문과 화서문, 서북공심돈, 방화수류정을 제외하면 크게 훼손이 되었기 때문에 옛 성벽과 복원한 성벽 사이의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성문에 새겨진 각자. 기록 문화에 충실했던 조선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지금도 우리는 건물을 짓게 되면 시공사와 담당자가 누구인지 등을 기록한 ‘공사실명판’을 남기고 있는데, 이는 조선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대체로 성을 축성할 때는 각자의 담당 구역이 정해졌기에 공사 책임자를 비롯한 담당자 등의 이름을 새겼다. 이는 부실공사를 할 경우 책임을 지우기 위한 것으로, 이러한 공사실명판의 예는 고구려 평양성 석편에서도 찾을 수 있을 만큼 오래되었다. 수원 화성 역시 화서문과 창룡문, 팔달문에 각각 공사 책임자와 담당자의 이름을 새긴 각자가 새겨져 있다. 이 가운데 팔달문은 현재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수원화성박물관’에서 탁본으로 관람이 가능하며, 화서문과 창룡문 각자의 경우 직접 현장에서 볼 수 있다.

고구려 평양성 석편. 성벽에 공사 책임자와 담당자의 이름을 새기는 건 오래된 역사의 흔적이다.

화서문의 각자. 마멸이 심해 육안으로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창룡문의 각자. 화서문에 비해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화서문 각자의 경우 마멸이 심해 육안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으며, 각자의 내용은 ‘별감동전부사 김처한, 패장첨사 김태서, 한량 윤진묵, 석수 박상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반면 창룡문 각자의 경우 육안으로 식별이 어렵지 않을 만큼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각자에는 ‘감동전영장 김기승, 감동전부사 김혁, 패장가선 이필재, 절충 홍이건, 석수 김명한 등 19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건 <화성성역의궤>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완벽한 복원이 가능한 수원 화성에 남겨진 공사실명판은 기록 문화에 충실했던 조선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보면 좋은 현장이다.

■ 수원 화성 성벽에 새겨진 낙서.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세심한 노력이 필요한 때

국내외 문화재를 찾게 되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말이 바로 “낙서하지 마세요”라는 말이다. 실제 지난날 경주의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방문했을 때 여기에 새겨진 낙서를 보면서 아연실색을 했던 적이 있고,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을 올랐을 때 이곳에서 한국어로 쓰인 낙서를 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잊을 만하면 뉴스에 문화재에 낙서한 소식이 들려오는데, 사회학의 시각으로 보면 영역 표시의 하나로 낙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남기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 해서 문화재에 낙서를 하는 것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원 화성의 성벽에 새겨진 낙서. 영어로 새겨져 있다.

서포루에 새겨진 낙서. 1960년대 이후 새겨진 낙서로 보존해야 할 문화재에 대한 낙서 행위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수원 화성의 성벽.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문화재에 대한 낙서는 수원 화성의 성벽도 피해 가지 못했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낙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사삼치’에서 ‘서남암문’으로 가다 보면 성벽에 영어로 새겨진 낙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서포루’에도 한자로 새겨진 각자가 있어, 화서문과 창룡문, 팔달문에서 볼 수 있듯 공사실명판의 사례가 아닐까 싶어 확인해본 결과 1961년과 63년에 새겨진 낙서로 밝혀져 허탈하게 하기도 했다. 물론 기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낙서 역시 시대의 흔적이 되기도 하겠지만, 보존해야 할 문화재에 대한 낙서 행위는 근절해야 할 나쁜 행위인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수원 화성의 성벽에 남겨진 쐐기 자국을 통해 팔달산과 숙지산, 여기산 등의 채석장을 찾아볼 수 있고, 팔달문과 화서문, 창룡문에 남겨진 각자를 통해 기록 문화에 충실했던 조선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또한 성벽 위를 걷는 것도 나름의 멋이 있지만, 성벽을 따라 당시의 흔적을 조명해보는 것도 수원 화성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해 보고 싶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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