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몽골 한 달 살기’를 계획했다. 작년 인연을 맺게 된 나브차, 마그네 부부가 사는 울란바타르에 이틀 전 도착했다. 몽골은 여름 동안 국가적으로 많은 공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전기공급이 풍족하지 않다고 한다. 전기가 갑자기 끊기거나 하는 일은 아니지만, 10일 이상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하니 첫날부터 사실 난감했다. 여름에도 찬물이 아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습관이 있는데, 영상 18도 정도의 선선한 날씨의 몽골에서 찬물 샤워를 할 수 있을까.

수도꼭지를 열어 물의 온도를 느껴보니 시골의 지하수처럼 찬 물이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도저히 찬 물로 샤워는 불가능할 듯. 머리를 쥐어짰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게 되기 마련이다. 전기 포트 하나에 가득 물을 끓였다. 그리고 여러 번 물을 데워서 씻으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시도해보기로 했다.

우선 찬물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머릿속까지 얼어버리는 것 같다. 샴푸의 거품이 많으면 헹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주 조금만 샴푸를 사용하여 구석구석 두피를 씻어냈다. 찬물이 닿을 때마다 오싹하다. 그런 다음 전기포트의 끓여놓은 물을 찬물과 섞어 양치컵 하나로 머리를 살살 헹궜다. 따뜻한 물이 머리에 닿으니 기분은 좋다. 양치컵 두 잔 정도의 물로 머리를 다 헹구어낼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샤워를 하였다. 한여름에 찬물로 재빨리 샤워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샤워기를 틀었다. 온 몸이 얼어 버릴 만한 추위가 느껴진다. 한국은 한 달은 폭염이 지속된다는데, 몽골은 다행히 시원하다. 밤에는 긴팔 옷이나 점퍼를 입어야 하는 온도다.

양치컵에 찬 물을 받고, 전기포트의 뜨거운 물을 섞은 한 컵의 물로 몸에 끼얹은 다음 손으로 비볐다. 3번 정도 물 샤워를 한 다음, 비누칠을 했다. 비누 역시 아주 소량만 사용하여 거품이 최대한 나지 않도록 살살 몸에 문질렀다. 다시 컵에 찬 물을 붓고, 뜨거운 물을 섞어 비누를 헹궈냈다. 5컵 정도의 분량으로 샤워를 마쳤다. 이렇게 몽골 첫 날의 아침의 샤워와 머리감기를 무사히 마쳤다. 놀라운 것은 전기포트 가득 끓였던 물 절반이 남았다는 사실. 양치컵 10컵 정도의 분량으로 나는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해냈다. 그러고도 뜨거운 물을 남겼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는 사람들이 현지에서 500ml의 생수로 이닦고, 세수까지 하고, 간단히 씻는다고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살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물론 몽골에도 하룻밤 숙박료가 20만원 이상 되는 호텔에서는 뜨거운 물도 마음껏 쓸 수 있다. 관광객들은 최고급 호텔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상상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한국 가을 날씨 정도가 몽골의 여름이다. 창문을 열어 놓으니 추워서 문을 닫고, 모포를 2개 겹쳐서 잠을 자야했다. 초원이나 사막이 아닌 울란바타르 시내의 아파트인데도.

분명 여행은 자신의 문제 해결력을 높여준다. ‘온수가 안 나와 어떻게 씻지?’ 라는 질문에 나름의 답을 구했다. 아주 적은 양의 물로도 충분히 머리감고 샤워까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정도 쯤이야 하는 여유로운 마음까지.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나브차와 마그네 부부는 뜨거운 물도 안 나오는 숙소를 다소 미안해했다. 몽골 현지 사정이 그렇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나는 사실 이 정도 규모의 아파트와 편의 시설만으로도 충분하다. 휴대용가스버너, 후라이팬, 쿠쿠압력밥솥, 전기포트와 토스트기, 따뜻한 이불이 있는 침대, 세탁기와 수건까지 있는 집인데 먹고 자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창문을 열어 보니 코끝의 찬 공기가 시원하다. 서울의 화려한 불빛이나 고층 빌딩, 세련된 도심 조경 등은 볼 수가 없다. 한국어를 잘 하는 나브차는 “나라가 후진국이라서 한국처럼 세련되지 못하고, 사람들이 못 살아요”라고 말했지만 결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절약하며 작은 것에 만족하고, 불편해도 온 나라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몽골 한 달 살기 하면서 물도 아끼고, 전기도 소중히 여기게 될 것 같다. 풍족한 환경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들, 불편함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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