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너무 덥다. 습하고 뜨거운 열기가 확 올라온다. 얼굴보다 큰 부채와 선풍기로는 안 되겠다 싶어 에어컨을 켰다. 자연 바람이 부는 그늘진 계곡으로 피신하지 않는 한 여름엔 육아도 쉽지 않다. 아이도 여름을 온몸으로 맞는지 칭얼거린다.

커다란 대야를 꺼내 물놀이를 시켜줬다. 더위가 달아나 신난 모양이다. 찰싹찰싹 손으로 때린 물이 자기 얼굴을 때리니 연신 까르르 웃는다. 그 웃음이 귀여워 여름이 싫어지려는 마음도 달아났다. 냉장고에서 미리 잘라놓은 수박을 꺼내 먹었다. 시원 달달한 수박을 먹고 있노라니, 여름도 보낼 만하다 싶다.

프랑스 평론가 롤랑 바르트가 “날씨만큼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없다”고 했던가. 지금 이 상황이 딱 그렇다. 계절, 날씨를 느끼는 감각과 감정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진다. 날씨 그리고 계절만큼 사람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을까. 날씨가 맑아서 기분도 화창하다, 비가 와서 쓸쓸하다는 표현을 많이들 하지 않는가.

언젠가 지인이 여름을 보내는 방법을 알려줬다. “집에 있을 땐 에어컨을 계속 켜고 외출할 땐 원격제어로 자동차에 에어컨을 미리 켜 놔. 자동차에서 내리면? 에어컨 빵빵한 카페로 들어가는 거지. 마트도 좋고. 이렇게 살다 보니 이젠 여름이 더운지도 모르겠어.” 들을 땐 제법 신통방통한 방법이라고 ‘엄지 척’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계절이 변해 가는 냄새와 질감을 느끼는 것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라는 걸 알아버려서 그런가.

아무튼 더운 건 맞다. 에어컨은 이제 필수템이 되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헌데 놀랄 일이다. 이 불볕더위 속에서도 ‘의식적’으로 에어컨 켜기를 지양한다는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봤다. ‘에너지’, ‘전력수급’ 등의 이유에서란다. 그들만의 철학을 지키는 셈이다. 미련하고 미친 짓이라는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산다는 이들의 팁은 다양했다.

생수병이나 아이스팩을 얼려서 수건을 감아 안고 자기, 얼린 물통 2개를 선풍기 앞에 두고 선풍기 작동하기(얼음이 선풍기 바람에 녹으면서 시원하단다.), 암막커튼으로 햇빛 차단하기, 계곡으로 피신가기 등등.

에어컨이 없었던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국학진흥원에 남겨진 기록에 의하면, 조상들은 계곡에서 강수욕을 즐기며 지냈다고 한다. 6월 보름을 유두일이라 하고, 유두날 전후로는 햇과일인 참외, 오이, 수박을 먹었다고 한다. 얼음은? 매우 귀해서 한 조각 먹으려다 싸움이 붙거나 감옥에 가기도 했단다.

우선 존경을 표한다. 나는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분노할 것이다. 그래. 한전을 상대로 전기료 누진제에 대한 소송에 나설지도 모른다. 아쉬운 건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다. ‘에어컨을 틀 권리’, ‘끌 권리’, ‘켜지 않을 권리’ 모두 온전히 누리고 있지 못하니 말이다. 전기세 걱정, 전력 수급,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 사람들에게 돌아온 업보. 어쩌면 우리는 말 할 자격이 없을 지도 모른다. ‘폭염에 원전 5기를 서둘러 재가동 한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야당의 논평에 대해서도. 에어컨을 켜지 않는 용감한 행동은 못할 지라도, 애꿎은 기상청만 원망하고 도마에 올리지 말고, 앞으로 더 더워질지도 모를 지구를 달래는 방안을 현실적으로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