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고려의 충신이라고 하면 최영 장군과 함께 포은 정몽주(이하 정몽주)를 떠올린다. 이 가운데 고려의 멸망을 저지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저항하고, 신왕조 수립에 반대했던 정몽주는 고려 멸망 시기의 충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사실상 정몽주의 죽음은 고려를 지탱하던 기둥이 무너진 것을 의미했으며, 이때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려가 망한다는 사실과 새로운 왕조 수립의 정치적 격변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당시 관리나 지식인들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킬 것인지, 새로운 신왕조에 몸을 맡길 것인지 양자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상촌 김자수 선생의 묘로 가는 길.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에 대한 충절을 바쳤다.

물론 신왕조의 기차에 몸을 실은 이가 있는 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고려와의 의리를 지킨 이들도 있었다. 야사이긴 하지만 두문동 72현의 사례나 새 왕조의 과거시험을 거부했던 소극적인 저항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 가운데 상촌 김자수 선생 역시 고려와의 의리를 지킨 대표적인 인사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인 김자수의 묘는 현재 광주시 신현리 오포읍에 위치하고 있다. 분당에서 오포읍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태재고개를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김자수 선생은 스스로 자결을 선택함으로써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게 된다.

■ 고려의 멸망이 허망하지 않은 이유? 의리를 지킨 김자수 선생의 묘

여말선초의 시기를 살았던 김자수 선생은 처음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해 관리로 등용이 되었다. 하지만 성격이 강직한 성품에 바른 말을 했기에 관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한편 이후 고려가 망하는 것이 현실화되자 망설임 없이 벼슬을 버리고 은둔을 선택했다. 이어 스스로 태재고개에서 자결을 선택하면서 망한 왕조와의 의리를 다했던 인물이다. 보통 한국사에서 나라가 망할 때는 외침과 항복이라는 과정을 통해 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고려의 경우 이러한 과정이 없이 왕조만 교체된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따라서 김자수 선생이나 포은 정몽주와 같은 이들로 인해 고려의 멸망이 허망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땅에 묻혔던 옛 신도비. 누워 있기에 ‘와비(臥碑)’라도 부른다. 지금은 마멸이 심해 신도비 자체는 새로 만들어서 세워두고 있다.

새롭게 만든 신도비와 누워 있는 옛 신도비의 모습

김자수 선생은 죽기 전 자신의 묘에 비석을 세우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겨 실제 묘에 비석이 세워지지 않았다. 또한 신도비의 경우 땅에 묻혀 있었기에 마멸이 심해 새로 제작한 신도비가 함께 세워져 있으며, 옛 신도비는 누워 있기에 ‘와비(臥碑)’로 불린다. 또한 김자수 선생의 순절비각이 세워져 있고, 이곳에 순절비가 세워져 있다. 계단을 따라 묘역을 오르면 가장 먼저 김자수 선생의 묘가 있는데, 가운데 봉분을 중심으로 가운데 상석과 향로석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장명등과 함께 좌우에 석양과 망주석 각 1쌍이 있으며, 문인석의 2쌍이 세워져 있는데, 크기가 다르고 세운 연대가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김자수 선생의 묘 뒤로는 아들과 며느리 우봉 이씨의 묘가 조성되어 있는데, 여담이지만 선생의 후손 가운데 추사체로 잘 알려진 추사 김정희가 있다.

순절비각 내에 모셔진 김자수 선생의 순절비

측면에서 김자수 선생의 묘

역사는 해석의 학문이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이해되어 왔다. 가장 최근에 명품 사극인 <정도전>은 기존의 정도전의 모습에서 탈피, 민본을 중심으로 했던 새로운 이상 국가인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고려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정몽주나 김자수 선생 같은 분들은 비록 망해가는 왕조라 할지라도 충절을 다 바치고자 했고, 사실상 조선 건국에 반대했지만 당시의 가치인 유교적인 관점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봉분을 중심으로 좌측면의 석물, 좌우 문인석이 2쌍이 있는데 서로 크기가 틀리다.

봉분을 중심으로 우측면의 석물, 비교적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정몽주 묘와 함께 가보면 좋은 곳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며 선택했던 고려와의 의리, 어쩌면 우리 중세사의 한 축을 담당한 고려의 마지막이 그래도 슬프지 않은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의 가치가 돈과 권력에만 혈안이 된 현실 속에서 이들이 보여준 충절과 의리는 오늘날에도 하나의 교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자수 선생의 묘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고 할 것이다. 또한 정몽주의 묘와 그렇게 멀지가 않기 때문에 함께 방문해보면 좋은 곳으로, 고려를 향한 이들의 의리를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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