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둘째 생각은 없고?
B: 그래, 너도 이제 둘째 슬슬 계획해야지! 딸이면 얼마나 좋아? 첫째가 아들이니…. 형님은 어때요?
C: 나는 얘들이 행복하면 그만이야. 첫 아이로도 만족한다면 그러면 된 거지. 나는 강요할 생각 없어.
A‧B: 어머, 그래요? 형님 의외네요.

시할머니 생신 때 식구들이 모였다. 뜬금없이 대화의 주제가 ‘나는 계획에도 없는 둘째아이’로 흘러갔다. 작은어머니 A‧B는 “둘은 있어야 한다”, “엄마에게 딸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의 시어머니 C는 ‘강요’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방임’과 ‘자유’의 경계에 서서 자식들을 키우신 분이다. 대체로 내게도 그런 편이다. 나는 이 불편한 자리에서 시쳇말로 쉴드를 쳐주는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며칠 후에 이 대화내용을 곱씹어 보며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내가 왜 감사를 느껴야만 하지?’ ‘나는 왜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

“시월드 어때?”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질문할 때면 ‘괜찮다’고 했다. 우리 부부의 삶에 큰 관여를 안 하셨기 때문이다. 시월드를 평가하는 기준은 나 자신의 존엄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가치관과 수많은 의사결정을 흔들지 않는, 침범하지 않는 시댁이라면 문제될 게 없었다. 예단‧예물을 얼마나 해줬고 못해줬고, 즉 돈이 있고 없고는 부수적인 문제였다.

헌데 한 해, 두 해 살다보니 ‘친정’과 ‘시댁’이 어떻게 다른지 느껴졌다. 내게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비슷한데 받아들이는 내 행동 양상이 달랐다. 이를테면 친정엄마가 집에 오신다고 하면 나는 청소를 대충 해놓고 있었다. 엄마는 우리 집에 오면 락스와 고무장갑부터 찾았다. 화장실 청소를 하신다는 게다. 반대로 시어머니가 집에 오신다고 하면 며칠 전부터 청소를 해놓고 부랴부랴 장을 봤다. 하루 주무시고 갈 때도 부모님은 우리 가족이 신경이 쓰이신다며 건넌방에서 조심스레 주무셨다. 시부모님은 TV까지 틀어놓고 거실에 당당히 요를 펴셨다. 내게 친정부모님은 ‘편하디 편한 가족’이었고, 시부모님은 ‘만년 손님’이었던 셈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가족이라는 탈을 쓴 ‘타인’이랄까. 사실 그렇기 때문에 ‘며느리’라는 위치와 신분, ‘시월드’ 세상이 어려운 게 아닐까.

최근에 MBC에서 꽤나 신선한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며느리의, 며느리를 위한, 며느리에 의한 전지적 며느리 시점의 방송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바로 그것. 방송에서는 여자들이 결혼하며 겪는 부조리하고 ‘이상한 상황’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만삭의 한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자연분만 강조에 눈물을 흘린다. 한 며느리는 손을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무거운 냄비를 옮기고 음식을 치운다. 결혼 후 첫 시댁 방문을 가야하는 며느리는 “예쁘게 하고 오라”는 시댁 식구들의 말에 미용실까지 간다.

아마 ‘며느리’를 제외한 시청자들은 놀랐을 것이다. 며느리들이 이토록 일상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폭력적인 경험에 시달리는지 몰랐을 테니까. 탈법, 불법, 합법의 경계가 모호한 시월드 인간들이 어떻게 며느리들을 통제하고 경계를 침범하고 휘두르는지. ‘이상한’ 며느리가 아니라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며느리들을 보며 나 역시 이를 악 물었다. 누가 뭐래도 중요한 건 나다. 둘째 아이를 낳든 안 낳든 내가 선택한다. 세상이 정한 기준에 꼭 따르지 않아도 된다.

조금 위안이 되는 건 사회 분위기다.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던 며느리, 여성의 고충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양상을 보여서다. 며느리의 삶을 다룬 문화 콘텐츠들이 그 예다. 웹툰이 인기를 끌자 단행본으로 출간된 ‘며느라기’, 영화 ‘B급 며느리’ 포스터, 에세이 ‘며느리 사표’가 그렇다.

전업주부였던 김영주 씨가 이혼 선언 이후 변화상을 담은 『며느리 사표』는 굉장히 신선하게 읽은 책이다. 결혼 23년차에 시부모님께 ‘며느리 사표’를 쓴 봉투를 내민 이 대단한 여자는 사표를 쓰고 2년 간 시댁을 찾지 않았다. 그녀는 말한다. 이제 시댁에 안부 전화 하지 않고, 시부모님도 바라지 않는다고. 의무가 없어지니 명절 스트레스도 없어졌다고.

‘며느리 콘텐츠’를 환영한다. 나 역시 ‘시월드’로 인해 내 영혼이 흔들리지 않도록, 아니 흔들리더라도 다시금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애써보려고 한다. 세상의 모든 며느리를 응원한다.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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