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인식 속에 종이라 하면 사찰에나 있을 법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 사찰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스님들이 타종하는 장면은 현장이나 대중매체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종은 사찰에만 있는 것은 아닌데, 서울 종로의 ‘보신각’이나 수원 화성의 ‘여민각’처럼 도심 내에도 종이 있었다.

수원 화성 내에 자리한 여민각. 종로 명칭의 유래가 된 것으로 당시 이곳에 있던 종은 팔달문 동종이다.

수원박물관에 전시 중인 팔달문 동종의 모습

도심 속에 종이 있었던 이유는 크게 타종을 통해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휴대폰만 열면 시간을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나 조선시대만 해도 종의 타종을 통해 시간을 인지했다는 점은 눈여겨볼만하다. 또한 보신각이나 여민각이 있었던 곳은 종이 있었다고 해서 ‘종로’로 불렸다. 이를 통해 지명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수원 화성 내에 설치된 여민각의 종은 화성시에 소재한 ‘만의사’에 있던 종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팔달문에 걸렸다가 지금은 수원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성덕대왕 신종. 동종의 역사에 있어 표준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동종의 역사에 있어 상징적인 종이라고 한다면 단연 ‘성덕대왕 신종’을 들 수 있다. 본래 봉덕사에 있던 이 종은 절이 폐사된 뒤 봉황대를 거쳐, 옛 경주부립박물관인 경주문화원에 있었다. 성덕대왕 신종은 국립경주박물관이 만들어지면서 옮겨지게 되는데, 이때의 사진을 보면 옮겨지는 종의 주변으로 경주에 살던 사람들이 길가에 나열해 있었는데, 마치 신앙과도 같았던 당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 안양에 마애종이 있다? 벽에 새겨진 동종

안양시 석수동에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문화재가 있는데, 바로 벽면에 동종이 새겨져 있는 모습이다. 통상 벽에 새기는 형태를 ‘마애(摩崖)’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서산 마애삼존불’의 경우 벽면에 삼존불이 새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의 경우 불상이 새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탑이 새겨진 경우도 일부 확인이 되는데, ‘안양 석수동 마애종(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의 사례처럼 동종이 새겨진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벽면에 새겨진 ‘안양 석수동 마애종’

마애종의 모습. 실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벽면에 새겨진 동종은 신라와 고려의 종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석수동 마애종의 외형은 크게 쇠사슬이 걸린 동종과 스님이 종을 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특히 연꽃 봉우리가 돌출된 ‘유두’를 비롯해, 유두를 감싸고 있는 ‘유곽’,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 등 동종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다. 이러한 석수동 마애종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음통’으로, 이는 성덕대왕 신종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동종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재미있게도 음통은 <삼국유사>에 등장한 바 있는 만파식적을 형상화 한 것으로, 용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석수동 마애종의 음통 부분. 쇠사슬이 걸려 있으며 음통과 함께 용이 형상화되어 있다.

성덕대왕 신종의 음통 부분. 석수동 마애종과 비교해보면 그 형태가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

석수동 마애종은 벽에 새겨진 유일한 종이라는 희소성과 실물과 다름이 없는 표현으로 종을 연구하는 데 있어 의미가 있는 문화재다. 또한 마애종의 주변에는 ‘중초사지 당간지주(보물 제4호)’를 비롯해 ‘안양사지’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어, 사찰의 건립 연대인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처럼 동종은 단순히 타종만 하는 기능이 아닌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했다는 점과 지명에 영향을 미친 점, 또한 해당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문화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 할만하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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