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중,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자랐어요. 그렇지만 한국인도 몽골인도 아닌 채로 10대 시절을 보내면서 소외감을 느끼고 왕따도 당했습니다. 오히려 몽골어도 잘 못하게 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2009년 혼자 몽골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한국의 NGO단체인 코피온에서 삼성증권단기팀이 봉사하러 오는데 한국어 통역이 필요하다고 하여 인연이 되었습니다. 이후 코피온 몽골지부의 직원이 되었고, 지금은 로컬 NGO ‘미래의 몽골’에서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 달 간의 몽골여행에서 만난 특별한 인연이 있다. 바로 ‘미래의 몽골’ (전 코피온 몽골사업소) 센터장인 자야와의 만남이다. 이곳을 찾으러 가는 길 역시 쉽지는 않았다. 울란바타르 수흐바타르 광장 앞에서 택시를 잡았는데 택시기사에게 주소를 보여 주니 잘 모르는 것 같다. 자야에게 전화를 걸어 택시 기사와 통화를 하면서 찾아갈 수 있었다. 도로가 움푹 패이고, 비가 와서 물이 넘치고, 외진 골목을 굽이굽이 들어가 찾을 수 있었다. 택시 기사가 혹시 엉뚱한 곳에 내려주면 어떻게 하나 불안한 마음으로 뒷좌석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다행히 벽화가 환하게 그려진 ‘미래의 몽골’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울란바타르의 바양주르흐 구에 위치한 ‘미래의 몽골’은 1960년대 러시아 군부대의 막사 건물로 이용되던 곳이다. 90년대 한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교회였다. 이곳을 10년 무상임대로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NGO단체인 코피온이 사업소로 사용했다. 2014년부터 코피온의 지원을 끊고 몽골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미래의 몽골’로 변경하여 복지와 교육, 문화 지원을 하고 있다.

센터장이라는 직함 때문인지 나이가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만났지만 자야는 스물 여덟 풋풋한 청년이었다.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대학을 몽골에서 다녔고 한국어학과와 관광학과를 전공했다. 지금은 싱글로 살면서 자신의 삶을 ‘미래의 몽골’과 함께 바양주르흐 구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해 의미 있는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자야로부터 몽골 특히 울란바타르의 2018년 현 주소, 자신이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 살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몽골 아이들보다 잘 먹고, 좋은 환경에서 살았죠. 하지만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어머니를 때렸어요. 몽골에서는 보지 못한 아버지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폭행으로 어머니는 우울감에 시달렸어요. 그 때 저는 교회를 다녔는데 선생님의 도움이 컸어요.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좋은 데 구경시켜 주시고, 예쁜 것도 사주셨어요. 교회 선생님의 도움으로 힘들었던 사춘기를 보낸 기억이 제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19살에 몽골에 들어와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어요. 코피온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직원으로도 채용되었어요. 집에 들어가기 무서운 아이들, 나의 어린시절과 닮은 아이들과 지내면서 이야기를 들어 주었어요. 내가 센터를 지키고 있으면 힘든 아이들이 찾아오니까요. 벌써 10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미래의 몽골’은 바로 자야의 미래이기도 하다.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미혼모, 범죄자가 되기 전에 더 좋은 여건에서 미래의 인재로 자라나갈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 지었다. 울란바타르는 몽골 인구 전체의 2/3가 거주하는 곳이다. 320만명 중 200만명이 한 도시에 밀집하여 살기 때문에 실업률과 빈곤율은 사상 최대다. 전기, 물, 도로, 교통 등의 기반시설이 열악하다. 겨울이 되면 울란바타르 ‘게르촌’에서는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100m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공기가 나쁘다. 칭기스칸이 세계를 재패하고 제국을 만들었던 나라. 우리나라 국토의 15.7배로 크고, 전세계 19위의 국토를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10대 자원 부국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극빈층들이 점점 늘어가는 이유는 뭘까.

겨울이 혹한 영하 40, 50도가 넘는 추위와 같은 자연재해 때문에 자신의 전재산을 잃고 수도 울란바타르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매년 증가한다. 경제성장률이 증가하지만 반면에 빈곤율도 급증한다. 실업률은 30%, 빈곤율 47%라고 하는 수치의 실상은 어떠할까.

“조드(혹한)로 가축을 잃고 고비사막이 매년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방목이 힘들어지고 있어요. 눈이 와서 얼어 죽고, 막혀서 죽어요. 반면 눈이 안 오면 굶어죽어요. ‘흰 자연재해’라고 불러요. 울란바타르 도시로 오면 일용직으로 일할 곳이 있다는 생각에 다들 수도로 몰립니다. 지난 해 만난 가정의 이야기에요. 엄마가 10명 아이를 낳았는데 7명이 죽었어요. 아빠가 아이를 때리거나 입양을 보냈어요.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물건들로 게르를 지으면서 살았고, 쓰레기를 주워 먹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남편은 알콜중독자이고,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살아가요. 남편이 칼로 위협하는 것을 막다가 손이 반토막 되기도 했어요. 이런 가정을 위해 게르 지원사업을 합니다. 따뜻한 양털로 게르를 보수해주고, 연료를 지원해 주고, 아이들 교육을 돕습니다. 주민등록증이 없어 학교 못 다니고 병원 못 다니는 사람들을 위해 등록증 받을 수 있게 도와줘요.”

‘미래의 몽골’이 진행하는 사업은 크게 교육, 복지, 프로젝트 사업 등이다. 아이들 같은 경우 교육을 통해서 자존감을 향상하고 꿈을 가질 수 있게 만든다. 지난 해 몽골대사관과 함께 ‘미래의 몽골’ 아이들이 그린 그림 전시회가 서울에서도 진행되었다.

몽골의 울란바타르 바양주르흐 구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미래의 몽골’은 앞으로도 어려운 가정과 아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한다. 자야는 자신의 20대를 이곳에 헌신해왔다. 가장 큰 보람은 바로 사람의 변화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꿈을 찾고, 미혼모들이 기술을 배워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 책을 읽고 공부를 하여 바른 인성으로 자라나도록 돕는 일, 추위와 고통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 일을 할 때 보람을 느낀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지만 빈곤의 문제를 끊는 핵심은 ‘엄마’라고 강조한다. 아이를 버리고 성노동을 해야 하는 미혼모가 늘어난다. 하지만 어머니가 일을 하며 돈을 벌 때 가정 수입도 늘어나고, 아이와 엄마 모두 행복해진다. 그래서 ‘어머니 모임’을 앞으로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 한다.

여행을 하면 견문이 넓어지고 세상을 배우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앎은 ‘사람’을 통한 배움이다. 몽골 한 달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미래의 몽골’ 센터장인 자야를 통해서 또다시 인생을 배운다. 의미 있는 일에 삶을 헌신하고 가치를 두는 것은 아름답다. 자야는 “사람은 모두 똑같이 사람이니까요”라고 말한다. 조금이라도 사람답게 살도록 누군가를 돕는 것. 그것이 사람으로 살면서 해야 할 일이라면서...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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