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는 ‘허르헉’ 이라는 전통음식이 있다. 양고기가 주식인 만큼 양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유목민의 생활은 물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설거지나 복잡한 과정이 있는 음식은 만들기 힘들다. 양을 키우는 사람들은 모두 양을 능숙하게 잡는다. 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죽음과 삶은 항상 가까이에 있다. 죽음이 멀지 않기에 삶 역시 자연스럽다. 허르헉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기회, 심지어 양을 잡는 과정을 직접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양을 죽이는 것을 직접 보면 괴롭게 느껴질까 봐 보지 않으려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닭 잡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할머니는 닭 목을 비틀어 금방 숨통을 끊고 어느 순간 우물가에서 닭을 해체하고 있었다. “으악! 징그러워” 하면서도 할머니가 만들어준 삼계탕이나 닭죽은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집에서 오랫동안 키운 개도 잡아먹는 일이 흔했다. 개를 커다란 자루에 넣고 몽둥이로 두드려서 죽이는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개고기 먹는 건 무조건 나쁘다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동물을 죽이는 일은 인간이 먹고사는 데에 필요한 과정이기에 마냥 나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가 늘고 살생을 금하는 종교도 있지만 자연환경에 따라 채식을 할 수 없는 곳도 있다. 당연히 동물을 먹는 일이 생활의 일부가 된다. 몽골에서도 척박한 땅에서 식물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자주 먹을 수 없다. 남고비 지역을 여행하면서 마트를 가면 유심히 살펴보곤 하는데 과일이 없는 경우는 흔했다. 야채와 과일을 구할 수 없기에 채식주의자는 될 수가 없는 환경이다.

고기를 먹는 일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빠른 시간 안에 길러지는 소, 닭, 돼지고기 등은 인간에게 이롭지도 않다. 성장촉진제나 항생제를 맞고 자라며, 신선한 풀이 아닌 가공된 사료를 먹는다. 사람들은 고기가 부위별로 깔끔하게 포장이 되어 마트에 진열된 것을 구입한다. 어떻게 가축들이 자라고 죽는지 알 길이 없다. 이것이 더 문제가 아닐까.

직접 양을 잡아 죽이는 과정을 눈으로 목격한 다음 오히려 진지하고 숭고한 죽음의 의식에 참여한 듯했다. 또한 양이 죽어가는 장면이 그렇게 잔인하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몽골의 중남부 지역의 한 유목민 집에서 직접 양 잡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허르헉을 위해 준비된 양 한 마리, 묶여진 채로 들고 와서 뒷다리와 앞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가족들이 잡는다. 양을 직접 키우는 주인은 칼로 가슴의 피부만 작게 절개한 뒤 손을 집어넣었다. 양의 가슴 안에 손을 집어넣어 대동맥의 숨을 멈추게 한다. 작은 떨림이 몇 번 있은 후 양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숨이 금방 끊어진 것이다. 흥건한 피바다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는 양의 가죽을 벗긴다. 북실북실한 양털 가죽이 온전히 벗겨지며 살만 드러난다. 가슴을 잘라 내장, 간, 심장 등의 장기를 하나씩 꺼낸다. 어마어마하게 큰 양의 위를 볼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풀을 먹는 양의 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축구공 크기만한 위 속에는 소화액과 함께 풀이 섞여 있었다. 소장이나 대장도 꼬불꼬불하고 길게 이어져있다. 남편이 양고기를 해체할 동안 부인은 내장을 정리했다. 손으로 쭉쭉 짜면서 내장에 차 있던 것들을 비워내면 깨끗해진다. 몽골에서도 역시 순대와 내장탕 등을 먹는다. 인간을 위해 양 한 마리는 아낌없이 자신의 몸 전체를 내어 준다.

뼈와 살이 붙어있는 부위를 칼로 해체하는 과정도 정교하다. 오랜 시간과 경험으로만 터득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모든 과정이 30분 안에 끝났다. 내장을 뺀 양의 몸통 속에는 온 몸의 피가 고이게 된다. 이것 역시 몸 밖으로 흐르지 않도록 그릇으로 퍼낸다. 양의 피도 순대 만들 때 사용한다.

이 과정을 모두 가족들이 함께한다. 서로 도와주면서 일사분란하게 요리를 준비한다. 어느 정도 양이 해체되어 가면 난롯불을 지핀다. 소나 말 등의 가축똥 말린 것과 나뭇가지를 함께 집어넣어 불을 때운다. 이 때 까만색의 주먹만한 돌을 넣어 뜨겁게 달군다. 허르헉을 할 때 돌을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허르헉 요리가 시작된다. 모두 흥미진진한 쇼를 보듯이 옹기종기모여 지켜본다. 동그란 게르에서 동그랗게 모인 사람들은 허르헉을 기다린다.

큰 솥에 양파를 두 개 정도 썰어 넣은 다음 양고기를 몇 점씩 집어넣고 뜨겁게 달군 검은 돌을 던져넣는다. 그러면 치이익 소리와 함께 연기가 가득하다. 뚜껑을 덮었다 열었다 하면서 고기와 돌을 차례로 가득 찰 때까지 넣는다. 소금을 뿌리는 것이 양념의 전부. 1시간 뒤 허르헉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양 한 마리로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양이 많은 걸까. 허르헉을 위해 14만 투그릭의 돈을 지불했다. 6만5천원 정도 되는 돈으로 양 한 마리를 잡고, 요리까지 해 주는데 스무 명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양을 죽이는 일과 먹는 일이 하나다. 삶을 위한 모든 과정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가 없다.

1시간 뒤 완성된 허르헉을 주인이 내왔다. 솥에 가득 담긴 고기의 양은 한 눈에 보기에도 많아 보인다. 고기 한 점을 뜯어 먹는데 정말 맛있다. 초원 가득한 풀을 먹고 자란 신선한 양고기. 그것도 조금 전 생을 마감한 양을 내 손으로 뜯어 먹고 있다는 게 미묘하다. 보드카 한 잔과 함께 허르헉을 먹는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나는 식사 시간이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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