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짐은 나날이 쌓여간다. 살림 햇수가 늘어날수록 수납장과 책장 등 어딘가에 물건이 하나 둘 놓여진다. 언제 쓸지 알 수 없는 자잘한 살림살이들. 그렇다고 무작정 쓸어버리기에는 아쉬운 생활용품들이다. 또한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책은 또 하나의 인생이라 여겼다. 2000권 넘는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웬만한 작은 도서관 수준이다. 집의 평수는 한정적인데 책이 늘어가니 골치 아픈 시점이 오고 있다. 사서 읽고, 안 읽은 책 버리고, 읽은 책 나눠주고,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비가 오는 오후 갑자기 생각나 책장 한 개를 처분하기로 마음먹었다.

책장 한 개를 버린다고 생각하니 그 안에 든 책을 끄집어내어야 한다. 여러 가지 장식품도 놓여 있기 때문에 지저분한 물건들을 싹 치워낸다. 이 과정도 쉽지 않다. 책의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책장에 있던 책을 거실 바닥에 늘어 세워놓으니 탑처럼 쌓인다. 꽂혀있을 때는 몰랐던 책이 바깥으로 나와보니 거대하다. 끙끙대며 책장을 비운 후 우선 현관 밖으로 내놓았다. 경비실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책장 덩치가 커서 두 명의 아저씨가 이동수레를 이용하여 가지고 가셨다. 남은 일은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뭔가 버리고 비우려고 하니 마음이 또 허전해진다. 우리는 결핍을 채우기 위하여 애쓴다. 물건으로 혹은 사람으로, 먹는 것 등으로 채우려고 한다. 결핍은 어디에서 생겨날까? 바로 내 안에 만족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 결핍감이 생긴다. ‘나는 부족해’ 혹은 ‘나는 완전하지 않아’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포장하고자 한다. 허전한 마음은 바로 부족하다는 심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여 사람들을 만나고 모임을 이어가기도 한다.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을 때 충만감을 느낀다. 멋진 브런치 카페에서 수다를 떨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잠시나마 만족을 느낀다. 주변 환경이 멋지고 그럴 듯하면 나도 역시 괜찮은 사람처럼 여겨진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맛집 사진을 올리고, 여행 풍광을 올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다. 내면이 충만하지 못할 때 외적인 무언가로 치장한다.

허전함이나 결핍은 급기야 불안을 낳는다. 집안에 물건이 넘치는 것은 ‘언젠가 필요하겠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밖에 만두를 빚지 않는데도 커다란 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사 때 처음 사용한 전기드릴을 계속 사용할 거라 생각하고 처박아둔다. 언젠가 읽을 책이라고 하면서 20년, 30년 책장에 잠자도록 한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빛을 바래고 성능을 잃어가는 것도 모른 채.

한 달 간 몽골 여행을 하면서 유목민들의 생활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정말 간소하기 그지없는 생활용품들. 냄비 하나로 모든 요리를 다 해내고, 컵 하나로 차 마시고 물 마시고 세수도 한다. 가구라고 할 만한 것들이 거의 없는 단순한 생활용품은 이동이 쉽다. 언제든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가벼움이 있다. 무거운 삶은 자유롭지 못하다. 어딘가에 자꾸만 주저앉게 만든다. 가진 게 없으니 훌훌 떠날 수 있는 자유도 생긴다. 집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어쩌면 그곳에는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소유로 과열된 사회다. 남들보다 좋은 환경, 부유한 집, 성공적인 위치 등을 얻기 위해 불꽃에 기름 붓듯 열정을 지피라 한다. 비움은 바로 생각을 정지하는 일이다. 생각하지 말고 본능대로 살아가는 일이다. 검증되지 않은 삶으로 자신을 불안으로 채우는 것보다 진짜 내면의 목소리를 믿고 직관으로 살아가는 게 필요하다. 비우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게 생각이 많아서이다. 무수히 많은 생각과 말들, 정답이 아닌데도 옳다고 주장하는 가설들이 넘친다. 타인의 말에서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대로 살아가는 내적인 힘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 비우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결국 책장 한 개를 비워냈다. 쏟아진 책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지난 세월이 흘러가는 듯하다. 추억과 관심이 묻어난 책도 있고, 충동적인 마음으로 구입한 책도 있다. 과감히 버리려 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깊은 숙고와 고민으로 채워진 물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의 말에 솔깃하여, 광고나 외양에 끌려서 채워진 물건들은 결국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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