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는 ‘적극적 조치’라는 말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의 내용으로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특정한 사람(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을 포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정, 개정 및 정책의 수립 집행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로 보지 아니한다”는 것이 적극적 조치다. 흔히 차별을 정의할 때 A와 B를 구분함에 있어 아무런 이유가 없다면 차별이라고 한다. 구분에는 배제를 기본으로 하지만 우대도 포함한다. 우대를 하는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차별에 해당될 수 있지만 이를 적극적 조치로 본다면 차별이 아니게 된다.

‘적극적 조치’가 때로는 갈등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최근 들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주차장 문제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일부 마트에 가면 ‘여성전용 주차장’이 있다. 이에 대해 다양한 생각이 있다. 한편에서는 여성은 주차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으니 여성 전용 주차장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는 여성을 과도하게 우대한 것으로 다른 남성 운전자를 역차별 하는 것이라 말한다. 같은 주제로 토론을 해보면 딱히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 다만 토론 속에서 정리되는 이야기는 ‘사회적 약자’라면 잠정적으로 우대를 받는 적극적 조치가 당연하다는 것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처럼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있고 제도화되어 있다면 저항은 없다. 최근에는 노인 우선 주차구역까지 확대되었다. 장애인 전용처럼 장애인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노인 ‘우선’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노인을 배려한 주차장이다. 이는 노인을 교통 약자로 구분하여 우대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혼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관공서에서 운영되고 있다. 시민들도 차츰 거부감 없이 적응했다. 노인이 교통 약자라는 것을 사회가 합의한 것이다. 하지만 임산부가 아닌 ‘일반 여성’을 주차에서 우대하는 것이 과연 ‘적극적 조치’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는 편이다.

최근 소방안전관리자 교육을 받고 시험을 봤다. 교육과정에 참여한 교육생 중 노인의 비율도 상당했다. 소방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자격증이 없거나 은퇴 후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싶어 하는 분들일 것이다. 교육을 4일간 집중적으로 받고 교육 마지막 날 바로 시험을 치르는 방식이라 젊은 사람들도 쉽지 않지만 많은 노인들이 도전하고 있었다.

자격증 취득을 위한 마지막 관문은 시험이다. 50문제를 60분 내로 모두 완료해야 한다. 시험을 금방 치르고 중간에 나와 여유 있게 차를 한잔하며 남은 시간을 기다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60분을 꼬박 다 사용할 만큼 시험 내내 여유라고는 없었다. 시험 결과 발표가 나고 교육생들은 희비가 엇갈린다.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과 다시 시험을 봐야 하는 사람들로 구분된다. 자격증을 받아 가는 그룹에 운 좋게 함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같이 공부한 노인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장애인의 경우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시험에 대한 편의를 제공받는다. 시험시간을 연장해 주기도 하고, 시험지나 답안지를 확대하여 큰 글씨로 제공하기도 한다. 보조공학기기를 사용하거나 전담 도우미가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을 닮아 가고 있는 노인들은 이러한 우대가 전혀 없다. 장애인들처럼 장애가 명확하게 보이거나 등급을 나누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신체적 기능이 떨어져 있는 노인이 50문제를 60분 이내로 젊은 사람들과 똑같이 시험을 본다는 것을 평등하다고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현장에서 실무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만 시험은 매번 떨어진다고 하는 한 노인의 억울함이 이해된다. 노인들은 시험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노인들에게는 현존하는 차별일 수도 있다. 새로운 인생을 계획하고 있는 노인,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상황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노인들에게 지금 바로 ‘적극적 조치’를 하는 것은 어떨까?

이건일(태평2동복지회관 관장)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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