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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외길인생’ 소목장 창호 보유자 김순기 씨
김소라 기자 | 승인 2018.10.02 13:47

행궁동 벽화마을을 걷다 보면 나무 창살이 전시되어 있는 공방을 만날 수 있다. 그 옆에는 목공소가 있는데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분이 항상 자리를 지킨다. 바로 경기도무형문화제 제14호 소목장 창호 보유자인 김순기 씨다. 지금껏 화성, 경복궁, 남한산성 등 문화재와 유적지의 창호를 짰다. 최규하,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도 김순기 씨의 창호로 만들어졌다. 1995년 무형문화제로 지정된 후 몸값이 올랐고, 수억원의 자재 창고도 갖고 있다. 하지만 고생했던 흔적은 김순기 씨의 손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이 고생 하면서 일 배우고 평생 한 길만 걸었어. 그래서 자식들 절대 이 일 안 시킬려고 공부시켰지. 애들은 미국에서 공부해서 물리학 박사하고, 아주대 의사도 해.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서 이제 나 죽으면 이 일도 사라질지 몰라. 내가 사는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어서 시에 기증할거야.”

이렇게 말씀하는 김순기 씨는 14살부터 목수 일을 시작했다. 평생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먹고 살기 힘든 가난 때문에 목수를 하기 시작했다. 영수증에 쓰인 글을 읽지 못했던 설움도 있다. 군대 갈 때까지 굶는 날이 허다했다고 한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집은 창호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한옥문을 볼 수 있다. 화장실 문은 사찰에서 쓰는 꽃살문, 안방 문은 강령전 임금님 방문과 같은 문살이다. 전시용 창호 자체도 예술 작품이다. 2층집의 창문을 모두 창살로 만들어 한 블록 길 건너편에서 보면 한옥창살을 길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고급 문일수록 창살수가 많고 홈 하나에도 0.1mm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아 제작에 공이 많이 든다. 최고급 문짝은 꽃살이다. 사찰에서만 사용하는 꽃살문은 벌집처럼 육각무늬로 되어 있다. 최고의 기술을 요하기에 당연히 가격도 비싸다. 정교한 숙련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슬빛 꽃살문, 솟을 매화 꽃살문, 꽃 교살문 등 우리 창호의 아름다움을 그의 손끝으로 만들어낸다.

창호를 짜는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창호를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자신한다. 지난 세월의 흔적이 바로 온 몸에서 뿜어 나온다. 58년간 일을 하면서 아직까지도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작업장을 떠나지 않는다. 고도의 정밀함을 요구하는 창살 작업은 장인이 갈고 닦은 숙련 기술에서부터 나왔다.

“한국 사람들은 5만원짜리 창살 등도 비싸다고 안 사가. 그런데 내가 만든 거 낙관 찍으면 수십만원도 하는데, 외국 사람들은 한 번 와서 구경하면 꼭 사가고 원더풀을 외치는데...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몰라.”

그는 창살을 만드는 기술은 손재주뿐 아니라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한다. 모양대로 깎아 간단히 붙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개물림과 엇갈리게 물리는 방법으로 문살을 만들어 결합하는데 마치 입체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오차 없이 깎아야 한다. 도면을 정확하게 만들어야 하고 계산도 해야 한다. 처음 배울 때는 도면이 있던 것도 아니고, 도면을 따라서 만들 수도 없었다. 낮에 혼나고, 밤에 이를 갈면서 혼자 만들었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

“수원 심재덕 시장이 인정해주고, 수원을 떠나지 말라고 했어. 우리 집 앞에 이 멋진 소나무들도 심재덕 시장 때 심어준거고. 내가 여기 마을도 다 관리해. 국가 문화재청에서 공사 들어오면 십억, 이십억 단위인데 자재가 있어야 공사가 가능하거든. 저기 자재 창고에 쌓인 나무 값만 수억원이야. 그걸 3년이상 잘 말려야 쓸 수가 있거든. 자재가 구비되지 않으면 공사를 할 수가 없어.”

소목장 김순기 선생은 자식에게 창살 기술을 전수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창살 박물관을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볼 수 있게 할 거라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작업장을 모두 박물관으로 만들어 보존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적 감각과 기술이 집약된 창호는 전통 문이 가진 아름다움과 예술의 극치다. 한옥의 미는 바로 창호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수원 행궁동에 살고 있는 경기도무형문화재 김순기 씨의 창호 인생은 바로 드라마였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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