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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가까이에 있지만 관심 밖에 있는 문화재, 화성 관련 표석 일괄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8.10.03 22:03

흔히 우리가 역사를 접근하는 데 있어 기록적인 부분의 검토와 함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문화재에 대한 접근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는 문화재의 검토를 통해 기록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따지고 보면 구석기 시대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땅을 살아왔던 역사의 흔적이 바로 문화재인 셈이다. 흔히 문화재라고 하면 크고 웅장한 것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문화재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국보나 보물만이 문화재가 아니라, 이 땅을 살아왔던 이들이 남긴 문화재 중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보 제1호인 ‘숭례문’. 지난 2008년 숭례문의 화재는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에 있어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자면 문화재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나는데, 이렇게 지정된 문화재는 국가가 관리하는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지에 따라 국보나 보물, 지방 문화재로 구분이 된다. 또한 유형의 형태가 있는지, 무형의 문화재인지 등이 구분이 되고, 근·현대 기간에 만들어진 문화재의 경우 등록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문화재가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름이 있는 문화재를 제외하면 보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적어도 숭례문 화재 이전까지 문화재를 관리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후 순위에 있었다.

문화재청에서 운영하는 ‘한문화재 한지킴이’. 국민들이 직접 문화재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방화로 숭례문이 불에 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아연실색하면서 가슴 아파했는데, 역설적으로 숭례문의 화재는 우리 문화재의 보호와 관리 실태가 얼마나 부실한지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후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예산의 증대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보호해야 할 문화재는 많고, 이 모든 것을 하기에는 문화재청의 예산만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들이 참여하는 ‘한문화재 한지킴이’의 사례처럼 문화재를 지키고 보호하는 운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관리의 필요성이 필요한 ‘화성 관련 표석 일괄’

매년 시행되는 정조 능행차 행사는 작년부터 수원을 포함해 서울과 화성 등 옛 정조 원행길이 지나는 지자체가 모두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축제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정조의 원행은 수원 화성과 융릉과 건릉, 용주사 등의 다양한 문화재와 함께 수원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정조는 자신의 재위 기간에 총 13번에 걸친 원행길에 나서게 되는데, 이러한 원행길의 상징적인 문화재가 바로 필로(蹕路)에 세운 표석이다.

‘괴목정교 표석’. 정조 원행길의 표석 가운데 하나로, 수원박물관의 야외에서 만날 수 있다.
화성에 남은 표석 가운데 하나인 ‘만년제 표석’. 지금은 화성시 향토박물관의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사진제공=화성시 향토박물관)

<수원군읍지>에 따르면 수원에서 현륭원(=융릉)에 이르는 구간에 총 18개의 표석과 11개의 장승이 세워졌다고 했다. 현재 수원에는 ‘괴목정교 표석’을 비롯해 ‘상류천 표석’과 ‘하류천 표석’ 등이 남아있는데, 이 3개의 표석은 현재 ‘화성 관련 표석 일괄’로 지정되어 수원시 향토유적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도 수원의 경우는 문화재라도 지정된데 비해 화성에 남아있는 표석인 ‘안녕리 표석’과 ‘만년제 표석’은 아직까지 비지정 문화재로 관심 밖에 있으며, 현륭원의 경계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외금양계비’ 역시 보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화성에 소재한 ‘외금양계비’. 현륭원의 경계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직까지 비지정문화재다.
지금은 서호 저수지로 불리는 ‘축만제 표석’

‘화성 관련 표석 일괄’에는 앞선 3개의 표석과 함께 ‘축만제 표석’과 ‘남창교 표석’이 포함이 되는데, 축만제는 지금의 서호 저수지다. 지금도 서호 저수지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이 표석은 정조 때 수원 화성의 농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조는 수원 화성 축성 이후 저수지를 확충하는데, 크게 ‘축만제’를 비롯해, 현 만석공원인 ‘만석거’, 지금은 사라진 화성의 ‘만년제’ 등을 만들었다. 조선이 농업사회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저수지의 확충과 치수시설의 정비가 필요했다. 따라서 현재 남아있는 ‘축만제 표석’은 당시의 흔적을 이해하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남창교 표석’. 과거에 남창교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석이다.

또한 팔달문과 화성행궁 사이 ‘백병원’ 앞에는 ‘남창교 표석’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표석은 ‘남창교’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석이다. 물론 지금은 ‘남창교’ 자체가 사라져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지만, 앞선 4개의 표석과 함께 ‘화성 관련 표석 일괄’로 지정된 문화재다. 하지만 ‘남창교 표석’의 경우 길가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이 표석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찾기가 어렵고, 이러한 표석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문화재이지만 안내문은 찾을 길이 없고, 표석 주변으로 쓰레기가 쌓이는 등 관리가 되고 있지 않는 모습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이처럼 정조의 원행길과 수원 화성과 관련된 ‘화성 관련 표석 일괄’은 충분히 역사의 의미와 가치를 간직한 문화재로, 지금처럼 정조의 능행차라는 외형적 변화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해당 문화재의 관리와 보존에 좀 더 신경 쓰는 지혜도 함께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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