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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낭만’은 아직 살아 있나요?
이소영 기자 | 승인 2018.10.04 14:48

여름이 끝나갈 무렵, 남편에게 자유시간을 얻었다. KTX를 타고 강릉으로 넘어가 호텔에서 1박을 했다. 온전히 혼자. 강문해변을 거닐고 최고급호텔 라운지에서 숙박은 못하더라도 값비싼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주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홀로 스티커사진도 찍었다. 혼자 나와 놀고, 먹고, 자는 건 엄마가 된 후로 처음 누린 휴가였다. 아이가 네 살이 다 되어 가는데 말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도 좋지만 누군가의 방해 없이 온전히 내 시간을 내 주도하에 보내는 건 또 다른 행복감을 선사했다.

때마침 지인이 강릉에서 곧 전시를 연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지인’은 ‘남편 친구’다. 그런데 나는 ‘남편 친구’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이 사람의 팬’이다. 강릉 공군부대에서 전투기를 타는 이 분은 취미가 유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강릉에서 비행을 하는 것조차 치열할 텐데 취미생활을 놓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강릉에 있어서 더 치열하게 그림을 그린다. 강릉의 해변을 찾아다니며 작은 원터치 텐트를 펴고 맥주를 마시며, 낡은 캔을 물통삼아 그림을 그린다. 작품의 퀄리티가 꽤 높다. 그런 그를 눈여겨 본 한 문화공간에서 전시를 하자고 한 모양이다. 아쉽게도 내가 휴가를 보낸 날의 다음다음날 전시가 열려 그의 작품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다. 그는 내게 카톡으로 자신이 그린 그림 몇 장을 아쉬움을 달래라고 보내줬다. 전시 이름은 ‘하늘, 바다, 낭만을 담아’였다.

나는 이 ‘낭만’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강릉에서 휴가 중인 터라 정말 내가 오랜만에 낭만을 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시비평 큐레이터가 팜플렛에 이런 글을 썼다. “자신 안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더욱 특별하다. 우리는 본디 하늘과 바다의 광활한 푸르름에 새로운 이상을 품는다. 작가는 당신의 마음 속 한편에 자리 잡은 울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가 그린 그림 안에서 ‘낭만’을 봤다.

우리 남편 역시 조종사다. 빠르게 속력을 내는 전투기를 타면서도 그 안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가을이면 가을, 눈이 덮인 겨울이면 겨울. 그런데 우리 남편 친구는 ‘하늘’과 더불어 ‘땅’, ‘바다’에서도 낭만을 누리는 것이다.

또 한분 더 낭만을 지키는 분이 있다. 횡성역에서 문화해설사로 일하는 60대 여사님이시다. 이 분은 세계를 여행하며 외국인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을 꿈꾸고 살았다고 했다. 마흔이 넘어 관광대학교를 나온 여사님은 영어공부를 놓치지 않으신다. 내면은 물론 외면을 곱게 가꾸는 것도 수준급이다. “영어 공부를 꾸준히 했더니 이번 평창올림픽 때 외국인들이 오고 갈 때 자유롭게 대화가 가능하더라고요. 항상 즐거운 상상을 해요. 내가 뉴욕거리를 걸으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 그리고 이따금 외국인들과 수다를 떠는 걸. 나이가 뭐가 중요한가요?” 보이지 않는가. 낭만이 죽지 않았다는 걸.

나는 낭만이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삼시세끼를 먹으면서도 내가 ‘밥을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때로는 혼동도 온다. 육아를 하며 정신적으로 바쁘게 살다보니 그렇다. 그러면서도 내 안에 숨어있던 낭만을 발견하고 꺼내는 건 용기다.

왜냐고? 낭만을 지키는 사람들은 요즘같이 각박한 시대에 다수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대로 살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극화할 필요도 없다. 눈치보고 움츠러들 일도 없다. 내 삶의 주도권을 갖고 낭만을 키워하고 유지해 나가는 것은 말이다. ‘작가’겸 ‘전투기 조종사’인 이 친구, 일제강점기 ‘별 헤는 밤’이라는 시를 쓴 윤동주, 횡성역 문화해설사 여사님의 공통점은 낭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요즘 ‘필사’로 내 낭만을 지켜보려고 한다. 아이가 잠든 밤, 피곤함을 물리치고 크라프트지 종이에 한 자 한 자 책 글귀를 옮겨 적어가며 희열을 느낀다. 없던 감수성이 살아난다. 최근엔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미 비포 유’라는 책 글귀가 내게 낭만을 선사해줬다. 당신도 당신만의 방법으로 ‘낭만’을 꼭 지켜보시길.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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