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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자세히 봐야 찾을 수 있는 수원의 보물,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8.10.10 19:11

종종 시험을 치기 위해 삼일상고를 갔던 적이 있다. 당시 방화수류정을 지나 삼일상고로 올라갔는데, 길을 가다 보니 작은 비각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는 비각에 이게 뭘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험이 있어 자세히 볼 생각은 하지 못한 채 학교로 들어가기에 바빴는데, 이후 몇 차례 삼일상고를 찾을 때도 그냥 지나치곤 했다. 뒤에 알고 보니 이 비각에 있는 비석이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보물 제14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통 탑비라고 하면 사찰의 경내에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수원 화성 내에 이러한 탑비가 있다는 것에 의아한 생각마저 들었는데, 그야말로 뜬금없는 장소에서 만난 보물인 셈이다.

매향동에 위치한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본래 이 탑비는 광교산의 창성사에 있었다.

■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가 들려주는 역사의 흔적

앞서 만난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는 원래부터 현 위치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탑비는 ‘창성사(彰聖寺)’라는 사찰에 있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창성사가 광교산에 있고, 이곳에 천희의 비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광교산의 창성사를 찾게 되면 이 탑비의 원래 위치를 알게 되는 셈이다. 지금도 광교산의 등산로이자 상광교 버스 종점 인근에 ‘창성사’라는 사찰이 있지만, 이 창성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지도인 <동국여도>에 표기된 창성사는 아니다. 현재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가 있던 곳은 상광교동 산 41번지로, 발굴조사를 통해 창성사지와 탑비가 있던 위치가 확인된 바 있다.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의 전경
수원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의 복제품

한편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의 주인공은 진각국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진각국사는 고려 공민왕 때 국사로 봉해진 승려 천희(1307~1382)를 말한다. 탑비의 외형은 고려 때의 석비 형식으로, 주요 내용은 진각국사 천희의 생애와 업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천희가 지금의 포항 흥해 출신이라는 점과 진각국사로 봉해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공민왕의 명에 의해 영주 부석사를 중수한 이가 천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76세를 일기로 소백산에서 입적했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보면 이색이 비문을 지은 것을 알 수 있는데, 마멸이 심해 누가 쓴 글인지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가치를 발휘한다.

이처럼 탑비가 있었을 ‘창성사지(경기도 기념물 제225호)’의 경우 발굴조사를 통해 대략적인 건물지와 탑비가 있었던 현장이 확인되었다. 우선 건물지의 경우 총 4개소의 건물지가 확인이 되었고, 출토유물 중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자기’의 출토로, 조선시대까지도 창성사가 명맥을 유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탑비가 세워졌을 구역에는 지금도 조선총독부에서 세운 고적비가 남아있다. 보통 이러한 고적비는 해방 이후 파괴되거나 땅에 묻힌 사례가 많은데, 지금도 일부 유적지에서 고적비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윤곽을 드러낸 창성사지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가 있었던 자리. 지금도 고적비가 세워져 있다.

한때 경향신문(1963년)의 기사에 현 창성사지에 있었던 탑비가 나온 바 있는데, 이후 어느 시기에 현 위치인 매향동으로 옮겨진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는 마치 드라마의 주요 소재처럼 출생의 비밀을 담은 채 뜬금없는 장소에 세워져 있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가치를 발휘하는 법으로, 창성사지가 아닌 곳에 세워진 이 탑비가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창성사지가 폐사된 데다, 접근성 자체가 좋지 못하기 때문에 무작정 탑비를 원위치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창성사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창성사지 일대의 정비가 이루어진다면 그때는 탑비를 광교산의 보물로 옮겨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광교산 곳곳에서 발견되는 초석 등의 사찰의 흔적

이외에도 <수원군읍지>를 보면 한때 광교산에 89개의 사찰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 창성사지처럼 폐사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고, 지금은 초석의 흔적만 간신히 남긴 사례도 적지 않다. 창성사지의 경우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로 인해 비교적 관심을 받은 측면이 없지 않다. 반대로 지금도 광교산 곳곳에서 초석 등의 사찰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지만, 대부분 이런 흔적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의 흔적을 방치하기보다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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