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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급 사회의 노인
이건일(태평2동복지회관 관장) | 승인 2018.11.01 08:18

가을이 쌀쌀해 졌다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치루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통상 이 시험에서 좋은 등급을 받아야 한다. 등급은 이뿐만 아니라 학교 내신에서도 적용된다. 이른바 높은 등급을 받은 학생이 좋은 기회를 부여받고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우리 사회에서는 종종 등급을 접한다. 우유의 등급을 따질 때도 가장 좋은 것이 1등급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높은 등급인 1등급을 선호한다. 2등급 혹은 3등급은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질 않는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이렇게 등급을 매겨 놓은 것이 많다.

학생들이 성적으로 등급이 정해진다면 노인들은 건강에 따라 등급이 나누어진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2005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이 제도는 2008년 7월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는 처음에는 3등급으로 나누었다가 지금은 치매가 포함되어 6개의 등급으로 운영한다. 등급은 보통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할 수 있는지가 주요 판정의 기준이 된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교육 할 때면 장기요양보험이라고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1등급’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한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1등급은 무조건 좋다. 고기도 1등급이 좋은 것처럼 일단 1등은 하고 봐야 한다고 답해준다. 질문을 바꾸어 그렇다면 “어르신들은 아프면 받게 되는 장기요양 등급은 1등급으로 받고 싶은가요?”라고 되물어본다. 다들 손사래를 치며 싫어한다. 죽을 때까지 누워서 지내야 하는 1등급을 받는 것은 실제로 죽는 것보다 싫다고 한다.

2014년 미장센 영화제에 출품된 ‘일등급이다(감독 이정호)’의 영화에서는 이런 일반적인 노인들의 생각을 뒤집는다. 영화 속에는 두 명의 할아버지가 나온다. 심신이 모두 건강한 상태인 이 두 노인은 장기요양보험의 1등급을 받기 위해 중증 치매환자의 연기를 한다. 1등급을 받기 위한 노인의 이유는 바로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서다. 암에 걸린 며느리를 위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진 아들을 위해 두 노인은 1등급을 위한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비단 영화 속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노인들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혹여나 병에 걸려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이것은 돌봄의 주체가 아직도 개인이나 가족에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인들은 더 많이 아파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1등급을 받아서 자식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경감시키는 것이 자식들을 위한 부모의 마음이다. 이것이 정상인가?

노인 부양은 더 이상 가족의 일이 아니다. 노인 부양은 가족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가족의 문제에서 우리 사회 공동체의 문제가 되어 국가가 나서서 도와준다면 노인들이 1등급을 받기 위해 연기를 하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은 사라질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의 빈곤 노인은 50%에 육박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운 노인세대의 어려움을 왜 가족에게만 지우려 하는가? 지금의 경제대국의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노력한 세대가 지금의 노인이다. 국가를 위해 일했다면 국가가 그 부양의 의무를 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모든 것이 등급인 세상, 노인 부양만큼은 등급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건일(태평2동복지회관 관장)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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