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눈에 띄는 것 중 저수지가 있다. 여러 도심을 가봤지만 수원처럼 저수지가 밀집된 경우는 보기 드문 사례로, 수원을 처음 찾았을 때 왜 이렇게 저수지가 많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1950년과 60년대에 찍힌 수원 화성의 사진을 보면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수원 화성의 바깥쪽으로 논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당시 조선사회의 특성상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기에 벼농사를 짓기 위한 저수지 등의 치수시설의 정비는 필요한 과제였다. 특히 수원 화성과 만석거 사이에는 ‘대유평(=대유둔)’이라고 해서 국영농장이 있었는데, 장용영의 둔전을 위한 목적과 토지가 없던 백성들을 위한 용도로 활용이 되었다. 지금은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옛 대유평은 이제 ‘대유평’ 혹은 ‘대평’ 등의 지명으로 남아 옛 역사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1795년 축조된 만석거. 치수시설에 대한 정조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 치수시설에 대한 정조의 관심과 만석거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과 노송지대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만석거(萬石渠)’를 만날 수 있는데, 옛사람들은 일왕저수지로 부르기도 했다. 만석거가 만들어진 배경을 이해하려면 당시 조선의 농업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조선의 주요 산업 기반이었다. 보통 조선의 초기에는 씨를 직접 뿌려 파종하는 방식이 성행했는데, 이를 직파법이라 한다.

수원 미술전시관 인근에 세워진 만석거 표석(복제)

그러다 임진왜란 이후 농법에 변화가 오게 되는데, 이는 못자리에 모를 키운 다음 논에 옮겨 심는 ‘이앙법’으로 변화된다. 이러한 농법의 변화로 더 많은 생산량의 증대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물이 충분히 공급이 되어야 했는데, 이 때문에 이앙법의 확대는 곧 치수시설의 확대 및 정비라는 과제를 남기게 된다. 만석거가 만들어진 배경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은데, 정조 때 전국적인 가뭄 속에 만석거의 축조 필요성이 제기된다. 당장 <홍제전서>를 보면 이같은 정조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농가(農家)의 이로움으로 수리(水利)만 한 것이 없다. <중략>... 지금 화성(華城)의 만석거(萬石渠)로 보더라도 제언(堤堰)을 축조하기 전에는 황폐한 논밭으로 잡풀만 자라는 땅이었는데 제언을 축조하고 나서는 원천(源泉)이 넓고 커서 척박한 땅이 비옥하게 바뀌었다. 비록 올 4, 5월과 같은 가뭄에도 제언 아래의 수백 석(石)이 나는 큰 들판은 한결같이 풍년이 들기를 기대할 수 있으니 가뭄이 재해가 되지 않았다.”

- <홍제전서> 일득록 10, 정사 5 기사 중

위의 <홍제전서> 내용을 보면 정조가 치수시설의 필요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이러한 가운데 만석거의 축조에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조선왕조실록>의 내용 중 만년제 축조 관련 기사를 보면, ‘만석거’를 만들 때의 백성들의 반응이다. 당시 내용을 보면 만석거와 대유둔을 만들 당시 백성들이 모두 좋아한 것은 아니어서 이를 위해 설득하고, 내탕전을 수만 금 내려 시행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만석거로 인해 척박했던 땅이 비옥한 땅으로 변한 것은 사실이고, 만석거의 이름 유래 역시 땅이 비옥해져 만석을 너끈히 생산했다는 의미(=혹은 만석을 생산하기를 염원하는 의미)에서 불리게 되었다.

■ 만석거와 함께 보면 좋은 영화정, 부사와 유사들이 교귀 의식을 진행하던 공간

1795년 만석거가 축조된 이후 만석거에 영화정이 만들어졌다. <일성록>을 보면 최초 영화정의 이름은 ‘교귀정(交龜亭)’으로 불렸는데, 보통 교귀라고 하면 부사와 유사들이 교귀정에서 관인을 주고받는 인수인계 의식이 거행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 관인이 거북 모양이므로 거북 귀(龜)를 쓰게 써서 교귀라 부른다. 교귀정이 영화정으로 바뀐 것은 1796년 원행 때로, 이때 정조는 교귀정에 들러 화성 사람들이 ‘꽃을 맞는다(翠華)’는 의미로 ‘영화정’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영화정’의 전경. 예전에는 ‘교귀정’으로 불렸는데, 부사와 유사들의 교귀 의식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옛 영화정의 자리. 지금은 이같은 내용의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흔히 역사의 현장을 바라볼 때 현재의 시각이 아닌 과거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이해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만석거와 영화정은 그 크기나 위치가 예전과는 다르다. 당장 만석거만 해도 과거에 비해 그 규모가 작아져 있으며, 영화정의 경우 본래 만석거의 남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현재 복원된 영화정은 원래 위치와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 외형상 영화정은 ‘ㄱ’자 형태의 8칸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정조가 원행에 나섰을 때 지나갔던 길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역사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지금은 만석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옛 흔적인 만석거와 영화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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