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흔적’이라는 단어는 어떤 실체에 대한 자취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문화재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여러분은 혹시 ‘풍화당(風化堂)’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생소한 단어인 풍화당은 일종의 ‘기로소(耆老所)’로, 지금으로 치면 노인정과 유사한 친목 기구다. 영조 때 독립관서로 설치된 풍화당은 주로 은퇴한 고위 문신들을 예우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또한 이들 대부분은 지역의 명망이 있는 인사였기에 풍화당은 친목 기구의 성격과 함께 후진들을 위해 풍화를 지도한다는 뜻에서 불리게 된다. 이러한 풍화당은 지금도 수원과 화성에 남아 있는데, 각각의 공간에 담긴 역사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따라서 오늘은 풍화당이 들려주는 역사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화령전의 운한각. 정조의 어진을 봉안한 영전으로, 수원과 정조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 화령전과 풍화당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 풍화당이 들려주는 이야기

수원하면 떠올리게 되는 인물 중 정조(재위 1776~1800)가 있다. 정조는 오늘의 수원이 있게 했다는 점에서 수원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화령전(華寧殿)’으로, 화령전은 정조의 어진을 봉안한 영전이다. 본래 왕들의 어진은 창덕궁 선원전에 보관되는 것이 관례인데, 정조의 어진이 수원에 있다는 점은 정조와 수원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인 순조는 화성행궁의 옆에 화령전을 건립하게 된다. 본래 화령전이 있던 곳은 신위(1769~1847)가 살았던 집으로, 이는 그가 남긴 <경수당전고>를 통해 알 수 있다.

화령전 내에 자리한 풍화당. 화령전과 풍화당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화령전의 중앙에는 정전이자 정조의 어진을 봉안했던 ‘운한각(雲漢閣)’이 자리하고 있는데, 운한각과 함께 눈길을 끄는 장소가 바로 풍화당이다. 풍화당은 화령전의 재실 격인 건물이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풍화당의 의미를 생각하면, 화령전과 풍화당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정조의 어진을 모신 곳에 ‘기로소’가 설치, 운영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데 <화성도>의 그림을 보면 풍화당은 현 화성행궁 앞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즉 애초에 행궁 앞에 있던 풍화당이 어떤 이유로 화령전 내부로 옮겨졌다는 말이 된다.

풍화당의 현판. 본래 재실로 쓰던 건물로, 정조의 어진이 창덕궁 선원전으로 옮겨진 뒤 풍화당이 자리하게 된다.

정조의 어진이 봉안된 화령전은 조선 왕실이 유지되는 동안 엄격하게 관리, 보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울 듯이 을사늑약(1905)을 통해 일제에 외교권을 박탈당한데 이어 경술국치(1910)로 이어져 조선은 망국의 길로 접어든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 조선 왕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령전은 수난을 겪었다. 우선 화령전에 모셔진 정조의 어진이 창덕궁 선원전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후 비어있던 화령전에는 ‘자혜의원’이 설치되었다. 그러다 ‘자혜의원’이 화성행궁으로 옮겨가고, 그 빈자리(=재실)에 들어선 것이 바로 풍화당이다. 즉 화령전과 풍화당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우리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 남양 풍화당, 옛 남양도호부의 흔적을 말해주다.

화령전의 풍화당과 달리 화성시 남양읍에 자리한 ‘남양 풍화당(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2호)’은 옛 남양도호부의 내아가 있던 자리다. 내아는 남양부사의 가족들이 거주했던 공간으로, 철종 때인 1852년 내아가 있던 곳에 풍화당이 건립, 현재까지 남아있다. 남양 풍화당은 지금도 노인정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본연의 기로소 역할에 맞게 운영이 되고 있다. 이러한 남양 풍화당의 내부를 들어서면 ‘ㄱ’자 형태의 건물이 남아 있는데, 보수공사를 거치기는 했지만 건물 자체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남양 풍화당. 옛 남양도호부의 내아에 설치가 되었다.

또한 남양 풍화당에서 주목해볼 ‘와룡루(臥龍樓)’ 현판이 있다. 와룡루는 남양도호부의 정문 격인 건물로, 1899년에 간행된 <남양군읍지>를 통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현판은 살아남아 옛 남양도호부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11년 남양 풍화당에 걸려 있던 와룡루 현판은 화성시에 기증, 지금은 화성시 향토박물관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으며, 풍화당에는 복제품을 걸어두고 있다.

남양 풍화당 내에 걸려 있는 ‘와룡루’. 와룡루는 남양도호부의 정문으로 그 현판만큼은 보존이 되고 있다.

한편 <남양군읍지>를 통해 당시 관아의 배치를 알 수 있는데, 크게 와룡루를 지나 도호부사가 집무를 보던 ‘동헌(東軒)’과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봉안했던 ‘객사(客舍)’는 붉은 칠로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남양도호부의 관아는 지금의 보훈회관을 비롯해 남양초등학교 일원으로, 지금은 남양 풍화당과 와룡루 현판 등이 간신히 남아 있을 뿐이다. 따라서 남양 풍화당은 단순한 노인정이 아닌 옛 남양도호부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역사의 현장인 셈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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