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첫눈이 내렸다. 아침부터 영화 <러브레터>의 음악을 틀어 놓고 감상에 푹 빠졌다. 유키구라모토의 피아노곡과 영화는 참 잘 어울렸다.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이 죽은 남자친구를 향해 ‘오갱키데스카’(잘 지내고 있나요)를 외치는 장면이 유명한 영화다. ‘오갱키데스카’는 일본어로 ‘잘 지내시나요?’, 혹은 ‘잘 지내나요?’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오랜만에 상대를 만났을 때 전하는 간단한 안부인사다. 하얀 설원에서 인연을 향해 안부 인사를 건네는 모습. 운명적인 만남이 연상된다.

영화는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하는 히로코가 자신의 옛 연인 이츠키에게 편지를 보내며 시작된다. 그리고 그 편지를 받은 같은 이름의 한 여자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 잊혀졌던 이츠키를 기억하게 된다. 한 남자를 통해 두 여자는 과거와 현재를 서로 잇게 되고, 영화는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그것이 사랑인지 몰랐던 시절의 첫사랑을 담는다. 1999년 한국에 개봉되었을 때 14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일본 오타루 지역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상과 가슴 저린 사랑 이야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감정이입했다.

우리는 흔히 ‘인연’은 신비롭고도 운명적인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인연이라는 말에는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이고, 약간은 비밀스럽기도 한 비현실적인 감정들이 담겨 있다. 우연이 자꾸 모여 인연이 될 수 있고, 인연들이 모여 운명이 될 때도 있다. 아무튼 낭만적인 말이다. 인연이라는 건.

영화 <러브레터>를 처음 접했던 때는 대학 시절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두 번 보았다. 처음은 는 헤어지기 직전의 연인과, 두 번째는 새로 시작되는 연인과. 둘 다 우연한 만남이었고, 꽤나 괜찮은 인연으로 이어진 사이다.

첫 번째로 헤어지기 직전의 연인과 보았을 때는 어떻게든 이 만남을 유지하고자 하는 애틋함 때문이었다. 이미 균열되기 시작한 틈이 점점 벌어지는 것을 알아챘고, 무덤덤하면서 일상적인 관계를 유지해갔다. 영화가 개봉되었던 크리스마스 무렵 함께 첫눈 내리는 날에 보통의 연인들이 하는 이벤트를 서로 나누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린 영화를 보고 난 후 얼마 못 가 헤어졌다. 시간이 오래 흐르지 않아 두 번째 연인이 생겼다. 그리고 또다시 <러브레터>를 보았다. 이 영화는 새로 시작하는 연인들에게도 적합했다. 자연스레 둘만이 속삭일 수 있는 비밀스러운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이후 한동안 오래 연인관계를 이어나갔다.

결론은 함께 <러브레터>를 보았던 첫 번째, 두 번째 연인과 모두 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를 생각하면 20년 전 헤어진 두 사람만 아스라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우연의 신비를 믿는다. 영화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또다시 과거와의 기억을 회상케 한다. 그 연인과 헤어졌든 상관없다. 그 모든 추억 역시 나의 일부이고, 소중한 인생의 경험이기 때문에...

오늘은 또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될까. 아름답고도 귀한 인연을 만나는 건 바로 시간을 쏟는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 주는 일은 내가 가진 귀한 것을 주는 행위다. 우리의 생명은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 옆에서 시간을 보내었던 일은 비로소 서로에게 모든 것을 주는 셈이다. 그래서 첫눈 오는 날은 지나간 연인들이 떠오르는가보다. 아무런 계산 없이 모든 것을 주었던 때가 그리워지면서.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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