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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이건일(태평2동복지회관 관장) | 승인 2018.11.27 01:17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다. 날씨가 추워지고 따뜻함이 좋아질 때가 되면 거리 중앙엔 ‘사랑의 열매’ 모금 온도계가 설치되고 각 지역마다 연말연시불우이웃 돕기를 시작한다. 이제 곧 나눔 행사를 치르고 그에 대한 내용들이 미담사례가 되어 각종 신문 지면이나 인터넷에 올라오게 된다. 내용의 대부분은 ‘어떠한 단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는 식이다. 지역 기업과 주요 자원봉사 단체는 앞다투어 이를 홍보한다. 신문에는 온통 따뜻한 소식들로 넘쳐난다. 

매년 이러한 뉴스를 접하다 보면 일부 뉴스에 대해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느낀다. 한 단체에서 어려운 이웃에게 물품을 전달한다. 사진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물품이 쌓여있다. 그 주변으로 후원을 하는 단체 대표 혹은 관계자가 보인다. 마지막으로 후원 물품을 받는 사람이 보인다. 남루한 옷에 어두운 표정이라 딱 보더라도 이 사람이 후원 물품을 받을 것 같다. 뉴스를 읽는 시선은 사진의 상단이나 하단에 펼쳐 있는 현수막에 고정된다. 그곳에는 행사명이 적혀있다. ‘소년소녀 가장 ◯◯ 물품 전달식’, ‘저소득 독거노인 ◯◯ 나눔 행사’와 같은 식이다.

그곳에 서있는 물품 수령 당사자들은 소년소녀 가장, 저소득 독거노인이며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현수막 밑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그리고 지역에는 이들을 소년소녀 가장이나 소득 없이 불쌍하게 사는 독거노인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아이들과 노인은 후원물품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를 감당한다.

얼마 전 한 자치단체가 市 맞춤형 복지를 실현한다며 폐지 줍는 어르신 지원 사업을 홍보한 적이 있다. 신문에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게 안전용품과 교통안전 교육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제는 기사 속 사진이다. 관계자 여러 명이 무대 앞에 나와 있고 형광색 조끼를 입은 한 어르신이 리어카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폐지 줍는데 쓰이는 리어카를 지원받은 모습이다. 무대 뒤에는 ‘폐지 줍는 어르신 지원 사업’이라고 커다랗게 적혀 있다. 허리를 꾸부정하게 리어카 손잡이를 들고 있는 어르신에게 물건을 후원받아 행복한 모습은 발견하긴 어려웠다.

‘아브라카다브라(Habracadabrah)’는 말이 있다. 한 걸그룹의 노래에도 나와 유명해진 이 말은 그 의미에 대해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헤브라이 말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해석이 주로 쓰인다. 현수막에 적혀 있는 그 말 그대로 소년 소녀 가장은 소년 소녀 가장이 되고, 저소득 독거노인은 실제 저소득으로 힘들게 살아가게 된다. 

‘소년소녀 가장’이 아니라 ‘우리 동네 아이들’이라고 적으면 어떨까? ‘저소득 독거노인’이 아닌 ‘이웃 어르신’이라고 적으면 어떨까? 그렇다면 현수막 아래에서 물품을 받으면서도 비참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나눔은 분명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행위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 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그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 아닌 자신들의 ‘홍보’가 된다.

후원물품 전달의 가장 좋은 방법은 당사자들을 직접 부르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의 복지 기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현수막 내용에 저소득 독거노인이라는 말과 소년소녀 가장의 말이 어색하지 않다. 당사자는 빠져있고, 단체 대 기관의 만남이 되기 때문이다. 후원물품을 전달받은 사회복지 기관은 그 물품이 필요한 당사자들에게 후원한 단체를 알려주며 전달해 준다. 홍보는 이웃들에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신문을 통해 당사자의 비참함을 직접적으로 광고하지 않는다. 후원을 받은 복지 기관은 별도로 홍보하고, 후원품을 전달한 단체도 부담 없는 마음으로 홍보 할 수 있다.

아브라카다브라!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폐지 줍는 저소득층 독거노인이라고 부르면 그 어르신은 저소득층이 된다. 소년소녀 가장이라고 부르면 그 아이들은 불쌍한 아이들이 된다.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무척 자연스럽다. 이웃은 서로 돕고 돕는 것이 당연한 존재다. 우리의 소중한 이웃을 더 이상 저소득 계층으로 부르지 말자. 그냥 이웃으로 부르자. 목적 자체인 인간을 더 이상 행사의 수단으로 괴롭히지 말자.

이건일(태평2동복지회관 관장)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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