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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화성행궁, 훼손과 복원의 현장이 들려주는 이야기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8.11.28 12:46

새로운 신도시 수원 화성의 축성과 함께 핵심이 되는 건물이라고 하면 단연 화성행궁을 들 수 있다. 보통 ‘행궁(行宮)’이라고 하면 한양을 벗어난 임금이 임시로 머무는 건물을 말한다. 임금은 한양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조선시대를 살았던 백성들 치고 임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건 손에 꼽는 사례이자 굉장히 희귀한 사례이다. 임금이 행차를 했던 사유는 크게 ▲능행 혹은 원행길에 나설 때, 화성행궁의 사례 ▲휴양 차 지방으로 행차할 때, 온양행궁의 사례(=30칸) ▲전란으로 인해 피난길 나설 때, 남한산성 광주행궁(=227칸)의 사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행궁은 임시이기는 해도 왕이 거처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기에 궁궐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행궁들 가운데 화성행궁은 576칸으로 만들어져 여러 행궁들 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다.

■ 화성행궁, 그 수난의 역사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 추존 장조)의 현륭원을 화산으로 천장하면서 새로운 신도시로 수원 화성을 축성했는데 이때 화성행궁이 함께 만들어졌다. 정조는 재위 기간 동안 총 13차례에 걸쳐 원행길에 나설 만큼 현륭원과 수원 화성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또한 수원부에 불과했던 도시의 격은 현륭원의 천장과 함께 화성유수부로 승격이 되었으며, 원행길에 나선 정조가 머문 화성행궁 역시 여느 행궁보다 규모가 크고 웅장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화성행궁은 대부분 복원이 된 건물로, 2020년까지 별주를 비롯한 우화관 등의 2차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봉수당. 일제강점기 당시 자혜의원이 설치된 곳으로, 이후 화성행궁이 훼철되며 벽돌 건물로 만들어지게 된다.
봉수당에 설치된 자혜의원. (사진=수원화성박물관, 수원의 궁궐 화성행궁 전시 중)

화성행궁이 본격적으로 훼손되기 시작한 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로, 당시 일제는 화성행궁을 철저하게 훼손했다. 우선 화령전에 있던 ‘자혜의원(=경기도립수원의원)’이 화성행궁으로 옮겨 오게 되는데, 화성행궁의 대표적인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봉수당을 본관으로 사용했다. 이후 병원의 확장과 함께 화성행궁을 훼철하고, 벽돌 건물을 세웠다. 또한 객사인 우화관이 있던 자리는 수원공립소학교(=신풍초등학교)가 들어서게 된다. 이에 따라 화성행궁의 건물 중 유일하게 남은 건물은 낙남헌 밖에 없었다. 낙남헌은 일제강점기 당시 수원군청으로 활용이 되었고, 해방 이후 신풍초등학교의 교무실로 쓰였는데, 지금도 기둥 사이에는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화성행궁의 건물 중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낙남헌의 전경
지금도 낙남헌의 기둥에 남아 있는 흔적. 일제강점기 당시 수원군청으로 쓰였고, 해방 이후 신풍초등학교의 교무실로 쓰였다.

■ 지금도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화성행궁

지금처럼 화성행궁이 그 형태를 갖춘 것은 불과 20년이 조금 넘을 만큼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지난 2006년 처음 화성행궁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행궁 자체는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었지만, 행궁 광장은 현재의 모습이 아닌 우체국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이 남아 있을 때였다. 당시만 해도 화성행궁 옆에 자리하고 있던 신풍초등학교는 지금은 광교로 이전한 상태로, 현재 우화관의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주차장 쪽의 별주 건물 역시 발굴조사와 복원이 진행 중으로, 2020년이 되면 화성행궁의 전체적인 복원이 마무리되는 현장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광교로 이전한 신풍초등학교. 발굴조사에 이어 지금은 신풍초등학교 건물이 헐리고, 우화관의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행궁광장에서 바라본 화성행궁. 불과 20년이 조금 넘는 시간에 행궁 광장의 풍경은 몰라보게 변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화성행궁의 복원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고, 주변의 풍경 역시 예전과 비교하면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 화성행궁이 단순히 건물로서 옛 것의 복원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수원 사람들에게 화성행궁이 어떠한 추억을 남겼는지,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 진행된 화성행궁의 훼손과 복원에 이르는 과정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고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화성행궁의 외형적인 복원과 함께, 그 내면에 담긴 이야기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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