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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수원 동신교회, 한 일본인 목사의 흔적이 말해주는 수원의 근대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8.12.04 07:21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 인물의 궤적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수원에 있는 한 일본인 목사의 기념비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수원의 주산인 광교산에서 발원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고 있는 수원천, 화홍문을 지나 매향여중으로 향하다 보면 노란색 외벽의 작은 교회를 하나 만날 수 있다. 이 교회의 이름은 수원 동신교회(이하 동신교회)로, 주변의 큰 교회와 비교하면 외형은 초라하게 보이는데 실상 수원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알려져 있다.

수원천에서 바라본 동신교회. 1910년대에 찍은 사진 속에서는 초가집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곳을 수차례 지나갔지만 그때마다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들어갈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동신교회를 지나는 길에 문이 열려 있어 밖에 나와 계신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동신교회는 영국의 플리머드 형제단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그간 성서 그 자체를 믿는 교회로 알려졌다. 하지만 7년 전부터는 목사를 비롯한 일반 교회와 같은 목회 제도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동신교회에 대해 주목하는 건 단순히 오래된 교회 때문만은 아니다. 교회 내부에는 한 일본인 목사의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수원의 근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기념비는 의미가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동신교회의 전경. 교회의 오른쪽 언덕에 노리마츠 목사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일본 최초의 선교사 노리마츠 마사야스 목사, 수원에 정착하다.

동신교회 내부에 자리한 기념비의 상단에는 ‘재주고승송형매기념비(在住故乘松兄妹記念碑)’라고 새겨져 있다. 여기서 ‘승송(乘松)’은 노리마츠 마사야스(이하 노리마츠) 목사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수원 사람들은 노리마츠 목사를 승송 목사라 불렀다. 노리마츠 목사가 수원을 찾은 것은 1900년 8월로, 이때 그는 가족(부인, 아들)과 함께였다. 이로 인해 노리마츠 목사는 일본 최초의 선교사로 불리게 되며, 현 북수동에 초가집 한 채를 마련해 수원에 정착했다. 이는 수원 최초의 일본인으로, 노리마츠 목사는 여러모로 최초의 타이틀을 많이 가지게 된다. 하지만 해당 시기는 을사늑약(1905)과 일제에 의한 한일강제병합(1910)이 있었던 시기로, 일본인에 대한 조선인들의 감정이 좋지 않을 때였다.

전면에서 바라본 노리마츠 목사의 기념비

그럼에도 노리마츠 목사는 다른 일본인들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우선 노리마츠 목사는 자신이 살고 있던 초가집을 ‘성서강론소’라 이름하며, 조선인들에 대한 선교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 자신이 일본 옷이 아닌 한복을 입고 생활하는가 하면, 자신의 아들에게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등 철저하게 현지화 된 선교를 지향했다. 동시대의 일본인과 비교했을 때 노리마츠 목사는 조선인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확연하게 차이를 보였던 셈이다. <신작로 근대를 품다>를 저술한 이동근 박사의 책을 보면 “이때 노리마츠 목사의 모습에 감명 받은 김태정이 수원천변의 토지를 노리마츠에게 주게 되는데, 이 토지에 세운 ‘수원 성서강당’이 지금의 수원 동신교회였다”라고 했다. 따라서 동신교회와 노리마츠 목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 광교산에 묻혔던 노리마츠 목사의 묘, 수원 동신교회로 오기까지

이처럼 수원에서 선교를 하던 노리마츠 목사는 1914년 일본으로 되돌아가게 되고, 이후 1921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때 노리마츠 목사의 유언에 따라 화장한 그의 유해는 수원 광교산에 묻히게 된다. 어떻게 보면 한국과 일본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이자 유산으로서 그 의미는 남다르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리마츠 목사의 묘가 있던 자리는 군용지와 훈련소를 거쳐 현재 보훈병원이 들어서면서 노리마츠 목사의 기념비가 동신교회 경내로 옮겨지게 된다.

동신교회와 노리마츠 목사의 기념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다.

이같은 내용은 동신교회 목사님을 비롯해 <수원야사>를 저술한 한동민 관장(수원화성박물관장)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가 있다. 여러 번 동신교회 앞을 지나쳤지만 이렇게 기념비를 방문할 수 있는 건 흔한 기회는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본다면 그저 하나의 비석에 지나지 않겠지만, 노리마츠 목사와 동신교회에 대해 알고 이 비석을 바라본다면 이전과는 달라 보일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수원의 근대 역사, 그리고 노리마츠 목사를 통해 당시의 수원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동신교회를 지나실 때 주목해 보실 것을 권해드린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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