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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천동에 ‘밤나무’를 심은 토박이 염상조 위원장의 인생
조백현 기자 | 승인 2018.12.04 23:18

과거 밤나무가 몽글몽글 탐스러움을 자랑하던 동네 율천동은 이름에 걸맞는 동네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논밭, 야산이 개발되고 무성했던 밤나무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과연 밤밭마을, 율천동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마을을 부활시킬 수 있을까? 율천동 제3대 주민자치위원장을 하던 시절 많은 고민 끝에 염상조 위원장은 밤나무 동산을 만들기로 했다. 마을의 정체성은 바로 우리들의 손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율천동은 밤나무 밭이라는 뜻의 율전(栗전)이 마을의 이름인데 밤밭이 하나도 없었다. 당시 민선5기 염태영 시장이 당선되면서 ‘마을만들기’ 사업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2008년도에 구상한 아이디어는 2009년도에 차츰 정리되었고, 2010년 밤나무를 제공해 줄 부여의 산림조합과 MOU를 체결했다. 그리고 2011년 3월 3일 율천동 주민센터에서 협약식을 열었다. 이상훈 동장, 조종만 부여군 산림조합장, 염상조 율천동 주민자치위원장, 강장봉 시의회 의장 등을 비롯한 시의원, 관계자 등 50여명이 함께 한 자리였다. 주민과 행정이 함께 마음을 맞추고, 특히 행정적인 뒷받침이 잘 이뤄질 때 마을 사업이 원활히 이뤄진다.

밤나무만으로 과연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살기 좋은 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염상조 위원장은 동네의 상징 및 정체성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라고 강조한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그곳을 상징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신념으로 살아간다. 율천동의 밤나무가 어우러진 밤동산은 녹색도시의 이미지가 될 뿐 아니라 마을의 역사를 다시 써 나가는 일이었다.

밤나무는 5년생 한 그루당 9만원씩이었다. 당시 일반 주민들뿐 아니라 자치위원, 수원시장, 수원시의회의장, 구청장 등이 총68주의 밤나무를 식재했다. 모두 자기만의 밤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이름표를 붙였다. ‘나무야 나무야 쑥쑥 자라 밤나무 숲을 이루렴’ 하는 기원과 소망을 담았다. 그리고 그 해 2011년도 가을 밤나무동산 앞에서 ‘밤밭축제1회’를 개최했다. 2018년 올해로 8회째 마을 축제가 이어져오고 있다.

내 집처럼 밤나무 동산을 가꾸었다고 한다. 물 주고, 잡초 뽑고, 괭이질을 하면서 관리인처럼 일하며 말이다. 오죽했으면 매일 밤동산에서 일하는 모습을 본 시민들이 염 위원장을 인부로 알았다고.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있다. 염상조 위원장은 율천동의 밤나무 동산을 만들었던 그 날, 함께 나무를 심고 주민들이 하나가 되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웃으며 말한다.

이렇게 봉사로 다져진 인생은 거저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관, 학교, 마을, 기관 등에서 만 30년간 봉사활동을 한 이력이 있다. 1988년도부터 반공연맹(현 자유총연맹)에서 부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하여 바르게살기, 초등학교 진흥회장, 주민자치위원장, 구 협의회장, 시 협의회 부회장, 삼일학원 학부모 회장, 학부모 운영회원장, 지역사랑발전협의회 사무국장 등.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직함을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보면 ‘감투 쓰기 좋아하는 사람’ 혹은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돈이 많은 지역 유지’ 정도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염상조’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일을 맡겼기에 최선을 다했다.

“봉사란 시간과 경제적 여건이 될 때 하는 일이 아니에요. 아무리 돈 많고, 시간 있어도 누군가 나를 믿어주지 못하면 안됩니다. 마을 어른이나 형님들이 저에게 일을 맡겨주셨어요. 20대 후반부터 청년회장을 하고, 30대부터 크고 작은 단체의 장을 하면서 점차 사회적인 안목도 생겼던 것 같습니다.”

원래 뛰어난 사람은 없다. 어떤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조금씩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간다. 기관과 단체에서 회장, 부회장, 총무 등을 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 사업을 운영하는 방법 등을 터득하는 법이다. 소통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결과를 이끌어내는 방향도 감각적으로 익힐 수 있었다. 마을 봉사는 결국 기업체의 경영과도 흡사하다. 모든 일은 사람들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봉사는 여러 가지 계기로 시작할 수 있다. 누군가를 자연스레 돕고자 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나의 사업에 이익이 될 것을 계산하여 할 수도 있다. 자발적으로 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권유에 의해서 시작할 수도 있다. 계기야 어떻든 타인을 위하고, 공동체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분명 힘든 순간도 있다.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십시일반 모아진 마을의 기금으로 활동하는 것인 만큼 더 열심히 하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렇게 살아온 인생의 결과는요? 바로 염상조 내 이름값 하고 사는 거로 충분합니다. 이만하면 된 거 아닌가요?”

조백현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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