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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 하청노동자의 죽음
김예니(청운대 강사) | 승인 2018.12.20 10:40

1996년 12월 26일, 신한국당 의원들은 비밀작전을 수행하듯 근처 호텔에 투숙했다 창이 가려진 버스를 타고 새벽 6시 국회로 모였다. 휴일 다음날 새벽, 비밀스레 국회로 집결한 그들은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기습적으로 안기부법과 노동법을 날치기로 통과했다. 특히, 노동법 법안의 골자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화 하는데 있었다. 노동조합의 활동이 위축될 수 있는 독소조항을 포함하여 정리해고제, 비정규직 노동법, 파견근로법이 당시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도둑처럼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곧이어 민주노총은 총파업에 돌입했다. 96년에 시작하여 97년 봄이 될 때까지 종묘에서 명동성당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최루탄과 깨진 보도블럭으로 난무했다. 대규모 시위대는 연일 계속 투쟁을 이어갔다.

그래서 그 결말은?

알다시피 우리는 정리해고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 비정규직과 파견근로제는 특별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일자리가 되었다. 나날이 높이지는 청년실업률은 비정규직이냐 정규직이냐, 하청이냐 원청이냐 가릴 여유 따위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사회로 진입하는 청년들에겐 이 세상이 자신이 본 세상의 전부였다.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라도 되기 위해 애썼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수하며 한 몫의 경제인으로 자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96년 여당의원들이 날치기 통과시킨 그 법안이 20년간 우리의 땅과 공기 중에 스며들어 우리의 일상을 옥죄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한 청년이 죽었다. 홀로 일하다 죽었다. 작업장에서 죽었고 그가 죽은 사실은 몇 시간동안 아무도 몰랐다. 그 작업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죽지는 않을 수 있게 해달라고 대통령께 호소하던 청년이었다. 죽은 청년의 어머니는 이 나라를 저주했다. 이 청년의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린 구의역 청년노동자의 죽음을 목도한 바 있다.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이 경비 절감이라는 이유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수하며 일하다 죽음에 이른 것을 알고 있다. OECD국가 중 산재사망 1위가 대한민국이라는 차가운 통계 안에는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어나간 사람들과 그들을 이윤보다 업신여긴 우리 기업과 사회의 민낯이 숨어있다.

이것은 96년 날치기 통과된 법으로 실행된 이 땅의 노동유연화가 맺은 결과다. 그때도 많은 이들이 예고했지만 예상과 다르지 않게 보다 비인간적이고 보다 이윤 중심적이며 보다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비정규직,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는 이 사회에 자리매김했다. 청년의 값싼 노동을 댓가로, 위험을 외주화하고 원청기업의 이윤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 사회는 기울어진 채 한 쪽만 배불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하루빨리 김용균법이 통과되고 기업의 책임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이 땅의 청년들에게 힘든 일 하기 싫어 실업률이 높다며 사람 못 구해 난리난 중소기업이 많다는 소리는 하지 말자.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사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2인 1조만 되었어도 그는 죽지 않았다.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지 못한 우리 사회가 함께 애통해야 할 일이다. 김용균 님의 명복을 빈다.

김예니(청운대 강사)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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