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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봉국사와 함께 조명해야 할 망경암 마애여래좌상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01.03 22:59

혹시 여러분들은 문화재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시는지? 필자의 경우 예전 부여의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 부여와는 인연이 잘 닿지 않아 서른 즈음에서야 찾게 되었는데, 이런 면에서 보자면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추억의 관점에서도 내게 의미가 있는 문화재였다. 그런데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보면서, 당시의 표현으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전율을 느낀 것은 “아~ 문화재에도 이야기가 있을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후 문화재를 바라보는 내 관점은 완전히 달라졌고, 문화재가 가지는 본연의 가치 역시 중요하지만 여기에 담겨진 의미와 이야기 역시 함께 조명해야 할 가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문화재에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런데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화재가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지난 번 연재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성남 봉국사만 해도 현종과 명성왕후 김 씨의 딸인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묘 인근에 세워진 원찰이다. 외형상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표면적으로 보자면 그저 빌라 숲에 둘러싸인 작은 사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남 봉국사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건 명선공주와 명혜공주가 숙종의 누이라는 점이다. 이는 훗날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 씨의 최초 장지 후보지로 두 공주들의 묘 인근으로 정해지자, 숙종이 노발대발하며 거부했던 사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성남 봉국사.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원찰로서, 훗날 숙빈 최 씨의 최초 장지 후보지로 거론되었지만 숙종이 반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숙종은 “어디 후궁이 공주가 있는 곳에 묻히려고 하나”라며 불쾌해 했던 모습, 막연히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만 봐서는 잘 와 닿지 않는 이런 내용은 성남 봉국사를 비롯해 지금은 서삼릉 비공개 지역으로 옮겨진 명선공주, 명혜공주의 묘를 보면 달리 보이게 된다. 이를 통해 숙빈 최 씨의 소령원이 왜 파주에 조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를 통해 역사의 흔적을 조명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 투박하고 거칠지만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의미가 있는 망경암 마애여래좌상

성남 봉국사를 뒤로 하고 영장산(193m)의 정상으로 향하다 보면 이내 ‘망경암(望京庵)’을 만날 수 있다. 봉국사 역시 큰 규모는 아니지만, 망경암은 이보다 더 작다. 하지만 봉국사가 가지지 못한 절대의 비경을 망경암이 간직하고 있다. 우선 영장산 자체가 높은 산이 아닌데 망경암에 도착하면 아래 가천대를 비롯해 멀리 서울의 잠실타워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여기서 망경에 대해 생각해보면, 서울 서초구에 ‘망경재(望京―)’로 불린 고개가 있는데, 그 유래가 “서울을 바라보는 고개”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망경암 역시 서울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붙여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현재 바라보는 서울은 과거만 해도 광주유수부에 속했던 곳이었고, 백제의 첫 도읍인 하남 위례성의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는 곳이기에 망경암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 하나로도 충분히 와볼만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망경암에서 바라본 서울. 조선시대 광주유수부에 속했고, 백제의 첫 도읍인 하남 위례성의 유력한 후보지인 곳이다.
망경암의 전경. 바위 쪽을 보면 마애여래좌상을 비롯해 망경암칠성대중수비, 망경암소비가 세워져 있다.

망경암에 세워진 안내문을 보면 여말선초 시기의 왕들이 망경암을 찾아 백성의 평안을 빌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성남 봉국사처럼 망경암은 세종의 아들인 평원대군과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의 명복을 비는 ‘칠성단(七星壇)’을 세웠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만 해도 평원대군과 제안대군의 묘가 망경암 인근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평원대군과 제안대군의 묘는 포천시 소흘면 이곡리로 이장을 한 상태로, ‘망경암’만 홀로 남아 옛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한편 이곳에 칠성단이 세워졌음은 ‘망경암칠성대중수비(望京庵七星臺重修碑, 1898)’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여기에는 칠성대의 유래와 관련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인접한 ‘망경암소비(望京庵小碑, 1874)’의 경우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비문은 이규승이 썼음을 알 수 있다.

‘망경암칠성대중수비’의 전경
‘망경암소비’의 전경
망경암 마애여래좌상 전면 모습
측면에서 바라본 망경암 마애여래좌상

한편 비석이 세워진 바위에는 ‘망경암 마애여래좌상(경기도 유형문화제 제102호)’을 비롯해 바위 곳곳에 명문이 새겨져 있다. 특히 마애여래좌상의 경우 바위에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보통 바위에 새겼다고 해서 마애불로도 불리는데, 이름처럼 ‘망경암(소재지) + 마애(바위) + 여래(부처, 불) + 좌상(앉아 있는 모습)’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석가모니불의 특징인 항마촉지인의 수인이 잘 드러나 있어 형태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외형상 아이들의 시각에서 마애여래좌상을 봤다면 분명 못생겼다고 타박 받을 만큼 조각수법은 떨어지는 편이다. 또한 사진만 봤을 때는 불상이 큰 것 같지만 의외로 작은 규모에 실망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을 통해 조선 왕실과 당시의 신앙 및 시대를 조명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서울이 바라보이는 망경암과 함께 주목해볼 역사의 현장인 것은 분명하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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