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사건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임진왜란이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들어봤을 만큼 조선시대의 정치와 경제, 역사를 다루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흔히 7년 전쟁으로도 불리는 임진왜란은 크게 ‘초기 왜군의 침입과 파죽지세의 북상 - 명나라의 참전과 평양성 탈환 - 일본의 남하와 왜성 축성, 장기전 대비 - 명과 왜군 사이의 강화협상 - 강화협상의 결렬, 정유재란 발발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 철군’ 순으로 진행이 되었다.

고양 덕양산의 정상에 자리한 행주대첩비

자세히 보면 왜군의 남하와 강화, 재침 사이에는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인물과 전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우리는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 부르며, 이를 기리고 있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은 크게 일본의 전라도 진출을 좌절시킨 김시민의 ‘진주대첩(1592)’, 서·남해안의 제해권을 장악했던 이순신의 ‘한산도대첩(1592)’과 함께 한때 평양성까지 진출했던 일본군을 남하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권율의 ‘행주대첩(1593)’을 말한다. 오늘은 이 가운데 행주대첩이 있었던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에 위치한 행주산성과 권율 장군의 위패를 봉안한 행주서원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 악전고투의 상황 속에서 반전을 이루어낸 행주대첩

우선 행주산성의 입지를 살펴보면 한강을 끼고 있는 나지막한 덕양산(124.9m) 자리한 토성으로, 지금도 일부 구간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행주대첩이 있었던 당시만 해도 행주산성은 목책이 주요한 방어 수단이었는데, 이는 사극 <징비록>에서 잘 고증한 바 있다. 권율 장군(이하 권율, 1537~1599)이 행주산성으로 오게 된 건 전쟁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한때 파죽지세로 북상해 평양성을 점령했던 왜군은 이후 명나라의 참전과 조명연합군의 기세에 밀려 후퇴해야 했다. 당시 명나라의 제독으로 전쟁에 참여한 이여송은 평양성 수복의 기세를 몰아 벽제관으로 남하했다. 하지만 명나라는 얕보던 왜군에 대패를 했고, 이후 명나라는 전투에 소극적인 자세로 변하게 된다.

고양 벽제관. 본래 중국의 사신들이 한양에 입성하기 전 머물렀던 객사 건물이다.

행주산성의 토성 구간

당시 조선군은 한양을 탈환하기 위해 전라도 순찰사 권율이 자신의 군사 4천명 가운데 절반을 갈라 절도사 ‘선거이(宣居怡)’에게 ‘양천강(陽川江)’ 언덕에 진을 치게 하고, 권율 자신은 2,300명을 이끌고 행주산성으로 옮겨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벽제관 전투로 명나라가 패배하고 후퇴하며 군사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으로 변하게 된다. 반면 벽제관 전투의 승리로 기세가 오른 왜군은 조선군의 한양 탈환을 저지하고 우환을 제거하고자 행주산성을 공격하게 되는데, 그 수가 무려 3만에 가까웠다. 당시 왜군의 총대장은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로, 총 7개의 부대로 나누었다. 여기서 1군을 맡은 이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2군을 맡은 이는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로 그야말로 왜군의 입장에서는 총력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파상공세를 펼치게 된다.

치열했던 행주산성의 기록화(사진=대첩기념관 직접 촬영)

하지만 전투는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이 되는데, 그저 임시방편인 목책으로 된 진지에 지나지 않았을 행주산성에는 최첨단 무기들이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총통기를 비롯해 화차, 일종의 시한폭탄인 질려포통 등이 큰 역할을 했다. 즉 왜군이 공격해오면 각종 화기를 쏘고, 가까이에 접근하면 화살과 돌을 던져 왜군을 격퇴했던 것이다. 이에 당황한 왜군이 성에 불을 지르기 위해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물을 부어 끄는가 하면 한쪽이 무너질 것 같으면 권율이 독려하며 결국 왜군은 포위를 풀고 후퇴하게 이르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당시 적군의 시체를 모아 불태웠는데, 그 냄새가 10리 까지 뻗쳤다고 전할 만큼 왜군의 입장에서 뼈아픈 전투였다. 이같은 행주대첩의 결과로 왜군은 한양을 방어하기 어렵다고 판단, 남해안으로 퇴각한 뒤 왜성을 쌓고 장기전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행주대첩의 의미는 결코 작지가 않음을 알 수 있다.

■ 행주산성과 함께 보면 좋은 행주서원지

이처럼 행주대첩의 승리는 임진왜란의 전황을 뒤바꾼 승리였고, 승리가 전해진 뒤 명나라 군이 보인 반응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명나라의 ‘사대수(査大受)’라는 자는 자신의 편장으로 하여금 예물을 보내고 전쟁의 승리를 치하했다. 또한 ‘경략(經略)’ 송응창은 권율을 “충신이자 나라를 중흥시킨 명장이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선조로 하여금 벼슬을 높일 것을 권했다.

권율 장군의 동상. 뒤로는 관군, 의병, 승병, 여성 등을 부조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보면 권율을 소개할 때 ‘행주치마 권율’로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행주대첩 당시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 왜군을 물리쳤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행주치마’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다만 전쟁 중 부녀자들까지 참전했을 만큼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충장사의 전경. 권율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행주산성은 크게 대첩문을 지나 권율 장군의 동상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동상이지만, 동상의 뒤로 각각 관군과 의병, 승병, 여성 등을 부조로 표현한 모습은 행주대첩이 어떻게 조선의 승리로 귀결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정상으로 향하다 보면 권율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충장사’가 자리하고 있고, 바로 위쪽의 대첩기념관에서는 임진왜란 중 권율이 참전한 ‘이치전투’, ‘독산성전투’, ‘행주대첩’의 기록화를 만날 수 있다.

행주대첩비(초건비)의 전경

행주대첩비의 전경. 가운데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다.

행주대첩비에서 바라본 서울

정상에 오르면 행주대첩비가 자리하고 있는데, 크게 2개의 대첩비가 자리하고 있다. 첫 번째 행주대첩비는 초건비라고도 불리는데, 1602년 권율이 세상을 떠난 뒤 행주산성 내에 세운 비석이다. 당대의 문장가인 최립이 비문을 짓고, 석봉 한호가 글씨를 썼다. 다만 지금은 마모가 심해 비석의 글자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편 초건비의 뒤로는 크고 웅장한 행주대첩비가 자리하고 있는데, 유적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졌다. 행주대첩비를 비롯해 충장사의 현판 등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라는 점은 유적을 대했던 당시의 정치적인 환경을 생각하게 한다.

행주서원지의 전경

행주서원. 과거 기공사로 불렸던 곳으로, 권율 장군의 위패를 봉안했던 건물이다.

한편 행주산성에 멀지 않은 행주외동에는 권율 장군의 위패를 봉안한 ‘행주서원지(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1호)’가 자리하고 있다. 1842년 헌종 때 왕명으로 만들어진 행주서원은 최초 ‘기공사(紀功祠)’로 불렸던 곳으로, 서원 내에는 ‘행주대첩비(중건비)’가 자리하고 있어 행주산성과 함께 주목해보면 좋다. 이처럼 행주산성은 임진왜란의 전황을 바꾸어 놓은 역사의 현장이자, 동시에 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역사의 교훈을 주는 장소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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