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은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아이를 안고 가다 넘어져 발목을 다쳤었는데, 깁스를 풀자마자 교통사고가 났다. 새로 뽑은지 얼마 되지 않은 차는 폐차 직전에 이르렀다. 차의 상태에 반해, 나는 가벼운 염좌와 타박상 진단을 받았다. 감사해야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너무 곤혹스러웠다. 차가 없어서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한다는 ‘현실’도 현실이지만, 이상하게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듯했다. 갓 서른살이 된 나는 그렇게 ‘3’이라는 숫자에 빗대 ‘삼춘기’가 찾아왔다. 첫 책을 출간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활발하게 일을 해야 했는데 모든 것이 멈췄다. 일의 진전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삼춘기는 한 달 정도 지독하게 나를 괴롭혔다. 열병을 앓는 마냥.

그리고 새해가 밝았다. 2019년. 새해맞이 타종식은 TV프로그램을 통해 보지 않았다. 설레임이 없었다. 그저 ‘하루가 또 흘렀구나’ 했다. 알고 지내던 정신과의사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새해 의미란 무엇이냐고. 굳이 새해를 기점으로 새롭게 무언가를 계획을 한다거나 마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단지 그동안 계획했던 일들의 진전 상황을 파악할 뿐이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특별히 뭔가를 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삼춘기란 참 묘했다.

그래도 해가 바뀌었으니, 다이어리는 장만했다. ‘50권 독서기록 노트 작가 시리즈’라는 제품이었다. 사이즈는 적당했다. 152x212x12mm. 겉표지는 버지니아 울프를 선택했다(샬럿 브론테, 헤밍웨이, 헤르만헤세 등이 있었다).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말한 그녀를 난 좋아하니까. 이 노트에는 달력이 없다. 일종의 독서 기록장이라고 보면 된다. 읽은 책에 대한 리스트와 동기와 경험, 요약과 정리, 생각과 느낌, 관련 자료와 정보들을 적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춘기가 찾아온 나는 올해 손이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책을 읽으며, 이 노트에 2019년을 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지인에게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다. 이 다이어리 역시 이름이 독특했다. ‘5년 후 나에게 Q&A a day)’라는 이 두꺼운 노트에는 365개의 질문이 담겨있다. 같은 질문에 대해 5년간 5개의 답을 기록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머리를 감지 않고 버틴 최장 기록은?’ ‘오늘의 나를 예술 사조로 표현한다면?’ 등 유쾌하고 철학적인 질문들. 해가 바뀌면서 나의 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30대 초반에 들어선 나는 20대에 꼬박 꼬박 적었던 ‘to do list’ 보다 ‘HOW’, ‘WHY’ 이런 질문에 눈이 간다. 그동안의 나는 활자 중독증에 이를 만큼 책 역시 지식을 주입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얕은 지식을 과시하듯 살았다. 겨우 서른해를 살고 개똥철학이나 읊는 내가 우습기도 하지만,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탐구해보고 싶다.

오늘 오전 한 육아매체에 인터뷰 질문지 답변을 보냈다. 기자가 보내온 질문의 내용이 이랬다. ‘아이가 본인을 어떤 엄마로 기억했으면 하시나요?’. 나는 답했다. “‘엄마’의 삶을 넘어 ‘여자’의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춤추듯 정열적으로 살았다’라고 기억했으면 해요”. 참으로 어렵지 않은가. 이제야 올해가 기대된다. 어떤 시대의 공감과 창조적인 삶의 영감을 주는 매개체를 만날지 말이다. 당신의 올해는 어떤 한해가 될 것 같은가.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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