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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의 지명에 담긴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이야기와 ‘행주성당’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01.21 07:05

지금의 행주산성이 위치한 덕양산 일대는 과거 행주나루가 위치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나루터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고, 옛 모습이 어떠했는지 현재의 시점에서는 알기가 어렵다. 다만 표석만이 이곳이 행주나루가 있던 곳임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조선 중종 때 제작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행주진(幸州津)’이 ‘공암진(孔巖津)’과 마주하고 있다고 적고 있는데, 공암진은 지금의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이다. 현재 공암나루가 있던 자리에 표석을 세워두고 있으며, 행주진은 기록처럼 공암진의 맞은편에 있지만, 좀 더 올라가 덕양산을 지나 신행주대교에 못 미쳐 위치하고 있다.

■ 행주의 지명 속에 남겨진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이야기

한편 ‘행주(杏州)’의 지명은 오랜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는데, 고양은 크게 ‘고봉현(高峰縣)’과 ‘덕양현(德陽縣)’이 합쳐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처럼 행주의 지명이 등장한 건 고려 때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본래 행주는 고구려 때 ‘개백현(皆伯縣)’으로 불렸고, 신라 경덕왕 때 ‘우왕(遇王, 우왕현)’으로 불렸는데, 일명 ‘왕봉(王逢)’으로 불린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봉현의 경우 고구려 때 ‘달을성현(達乙省縣)’으로 불리다가 경덕왕 때 개칭이 된 지명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왕봉의 지명과 관련해 고구려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덕양산(=행주산성)에서 바라본 방화대교. 방화대교를 지나 덕양산의 맞은편으로 공암나루가 위치했다.

‘안장왕과 한씨 미녀’ 이야기의 요지는 태자 시절의 안장왕이 백제에 잠입했을 때 그곳에서 만난 한씨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장래를 약속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자신의 신분을 밝힌 안장왕은 한씨 여인을 아내로 맞겠다는 약속과 함께 고구려로 돌아가고, 한씨 여인은 안장왕을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한씨 여인은 그곳의 태수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안장왕이 한씨 여인을 구해올 것을 명하게 되는데, 이때 등장한 장수가 ‘을밀(乙密)’이다. 결국 을밀은 한씨 여인을 구하게 되고, 한씨 여인이 달을성현의 높은 산 정상에 봉화를 올려 안장왕과 만났다는 이야기로, 지금의 고봉산의 유래가 되었다.

덕양산의 정상에 위치한 행주대첩비. 행주의 지명과 관련해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설화가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왕봉의 지명과 관련해 한씨 여인이 개백현에서 안장왕을 맞이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이야기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삼국사기>의 지리 편에 간략하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로서의 기록보다는 설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렇지만 전승의 관점에서 지금도 여전히 지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행주라는 지명에 숨겨진 역사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 나루터 인근에 행주성당이 자리한 이유는?

행주나루터와 함께 주목해봐야 할 장소 중 ‘행주성당(등록문화재 제455호)’가 있다. 성당이야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종교시설이지만, 행주성당이 의미가 있는 건 성당의 외형과 함께 이곳에 담긴 역사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행주성당은 1910년에 최초 한옥성당으로 만들어졌는데, 서울과 경기북부에서는 명동성당과 약현성당에 이어 세 번째로 만들어진 성당이다. 1928년 현 위치로 옮겨진데 이어 1949년 증축을 거쳐 2015년 보수 등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나름의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다, 명동성당과 약현성당과 달리 한강에 인접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은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보여준다.

행주성당이 그려진 벽화. 행주성당과 행주나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측면에서 바라본 행주성당의 전경

지금이야 어떤 종교를 믿든 상관이 없는 시대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천주교는 서학이란 이름으로 탄압의 대상이 되어 4차례에 걸친 박해의 시대를 겪어야 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때문에 천주교를 믿는 신자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깊은 산 속이나 해안가 등에 교우촌을 형성, 모여 살게 된다. 행주성당처럼 강에 인접해서 성당을 만드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이동의 편리성 때문이다. 지금이야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육로보다는 강이나 바다를 이용한 수로를 통한 이동이 더 편한 시대였다. 이는 앞서 소개한 행주나루처럼 강을 중심으로 나루가 설치되어 수로를 통한 이동이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낙동강을 중심으로 상주 퇴강성당과 칠곡 가실성당이 자리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이 모여드는 나루를 중심으로 성당이 만들어진 배경이 되었던 셈이다.

행주성당의 내부 모습
행주성당. 나름의 역사성과 공간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현장이다.

여기에 행주성당처럼 외형이 한옥으로 지어진 사례는 생각처럼 많지 않은데다 이 땅에 전래된 종교들이 토착화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한옥과 성당의 묘한 조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행주성당은 나름의 역사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행주성당을 방문하게 되면 주차장 벽화를 한번 주목해보면 좋은데, 행주성당의 옛 모습을 벽화에 담고 있다. 이 그림에서 한강에 인접한 행주나루와 함께 행주성당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행주성당이 한옥이라는 외형적인 특징과 역사성을 넘어 왜 강에 인접한 이곳에 성당이 세워진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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