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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한인숙 기자 | 승인 2019.02.11 08:59

두더지를 잡는다. 때릴수록 고개를 들고 올라오는 두더지, 맞으면 삑 하고 들어갔다가 보란 듯 예서제서 머리를 치켜들고 올라온다. 있는 힘을 다해 두더지를 잡는다. 때릴수록 점수가 올라가고 보너스도 준다.

팔죽지가 뻐근하도록 힘차게 내리친다. 어떤 놈은 제대로 맞았는지 쏙 들어가 근신을 하는가하면 어떤 놈은 힘겨루기라도 한판 하자는 건지 좀처럼 몸을 숨기지 않는다. 억누를수록 고개를 드는 불편한 마음 같다. 마음이란 놈이 어찌나 고약한지 자꾸 심통을 부릴 때가 있다. 머리가 이해하는 일과 가슴의 움직임이 따로 이다 보니 통제가 잘 안 된다.

명절이 지났다. 시댁으로 친정으로 바쁜 며칠이었다. 양가가 대가족이다 보니 세뱃돈만 해도 만만치가 않다. 챙겨야 할 사람이 많으니 힘들다. 한 달 생활비를 세뱃돈에 다 투자해도 부족하다. 조금 더 넣었다 빼고 액수를 줄여 봉투를 더 만들고, 조금 더 주고 싶은데 부족한 듯 싶어 마음이 쓰이고, 오죽하면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생겼을까마는 사람노릇하기가 어렵다.

흩어져 살던 동기간들 한자리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도 먹고 덕담도 주고받으며 세상사는 이야기 하다보면 즐거운 것이 명절이지만 동기간이 여럿 모이면 생각 없이 던지는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목에 가시처럼 남아 욱신거리기도 한다.

특히 결혼하라는 말과 취직준비는 잘 되어 가느냐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염려하는 마음에 누군가 한 마디 꺼내면 봇물처럼 터져 화두가 되기도 한다. 무심코 혹은 예의상 하는 말이 경우에 따라 격려가 되고 불편함이 되기도 한다. 생각과 입장이 다르고 동기간에도 선의의 경쟁상대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특히 같은 또래의 자녀가 있으면 더 그렇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두더지에 감정이 실린다. 얄미운 사람 떠올리며 더 힘차게 때린다. 야속해서 때리고 서운해서 두드리고 감히 어디에 머리를 빳빳이 들고 올라오느냐고 때리고 또 때린다. 짝꿍이 옆에서 잘한다고 응원을 한다. ‘저기 올라왔다 어 저놈 때려잡아’ 더 신나서 소리친다.

속도 모르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얄미워서 또 때린다. 몇 십 년을 같이 살고도 저렇게 눈치가 없으니 내가 속이 터지지 생각하며 두더지를 잡다보니 슬퍼진다.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서러워서 웃는다.

하기야 내 속 나도 모르는데 누가 내 속을 알아주기를 바라겠는가. 그런 바람조차가 어리석음이다. 그저 말없이 맞아주는 두더지나 실컷 패주자 싶어 500원 짜리 동전을 몇 번 더 넣고 두드렸다.

이런 것이 다 사람살이이고 살아있음에 즐길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순간을 견뎌내는 일이 쉽지는 않다. 세상이치를 깨우치는 일과 앎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에는 타협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후죽순처럼 올라오는 감정을 다스리려 심호흡을 깊게 해 본다.

입춘이 지난 때문인지 나무가 환해졌다. 동장군은 기세를 부려도 나무는 봄을 준비하나 보다. 겨울을 견딘 만큼 나무는 까치발을 들 것이고 잎을 꺼내기 위해 힘찬 펌프질을 시작할 것이다.

명절도 지났고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다시 시작이다. 뻐근해진 근육을 이완시키고 다소 복잡했던 마음을 한쪽으로 비켜놓는다. 두더지처럼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감정을 망치로 조절하며 봄의 기운이 있는 곳으로 한 걸음 나서본다.

한인숙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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