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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가장 쉬운 방법, ‘걷기’
이소영 기자 | 승인 2019.02.11 09:59

사위를 향한 장모사랑이 담겼다는 덩굴식물 ‘사위질빵’, 맷돼지의 것으로 추정되는 털뭉치, 버드나무와 팽나무, 나무 위 벌집…. 얼마전 동네에 사는 숲해설가와 함께 산책길을 걸으며 본 것들이다. 고작 4km 남짓한 길을 걸었을 뿐인데, 4년은커녕 40년을 같은 길을 지나가더라도 위의 것들을 못 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숲해설가는 동네사람들이 모르는 산책길을 발견해 사진을 찍어 남겨둬 일종의 ‘산책 매뉴얼’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누구와 걷느냐,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감각감수성이 있느냐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는 하루였다.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집 앞에 남녀공학을 두고, 빠른 걸음으로 20여분을 걸어야 도착하는 여고에 지망 한 이유도 수원화성길 언저리를 걷고 싶어서였다. (물론 ‘두발자유’도 있었지만) 취직이 안 되고 실연을 당했을 때도 울며 걸었다. 한 때는 작은 물병과 책을 챙겨 산을 자주 올랐다. 임신을 했을 때도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취재를 이유 삼아 더 걸었다. 태동을 느끼며 조심스레 걸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지난해 말, 왼쪽 발에 ‘반깁스’를 하고 나선 걷기라는 행위가 매우 소중해졌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운동화를 신을 때마다 설레임을 느낀다.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으로 뜰 때면, 걷기를 방해하는 듯해 화가 나기도 한다.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책의 부제를 볼 때면,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녀가 발견한 걷는 행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낳는다(p.21), 걷는 일은 몸이 땅을 척도로 삼아 스스로를 가늠하는 방식이다(p.59),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먼저 간 사람의 해석을 받아들인다는 것(p.117), 보행은 여자들이 사회적 제약 속에서 사회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가장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일, 몸을 움직여보고 상상을 펼쳐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일이다(p.167).

내 경우 걷기는 나를 탐구하는 시간이다. 독서와 비슷하다. 아기띠를 하고 아이와 한창 돌아다녔을 때의 걷기는 일종의 ‘투쟁’과 ‘열망’의 걷기였다. 아이와 함께 걷다 들어가게 되는 인테리어가 이쁜 카페와 공방, 대학교에서, 수유실에서 또 다른 것과의 소통을 꿈꾸며 1년 후, 5년 후, 10년 후 내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더 많이, 더 오래 걸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내가 되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아는 환경미술가는 걸으며 골목 구석구석 그림을 그린다. 도시게릴라프로젝트 일환으로 그린 그림이 꽤 된다. 배화여대로 가는 골목길, 매동초등학교 앞에 가보면 아주 멋진 그림이 있다. 벽돌 위에 덧칠해 생긴 시멘트벽 밑부분을 인왕산으로 삼아 힘겹게 산을 오르는 사람들 그림이다. 걷기를 통해 탄생한 걸작이라 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지인은 걸으며 다른 사람들의 신발을 살펴본다고 한다. 닳은 신발의 모양새를 보며 낯선 타인의 성격을 추정해보기도 한다고. 어떤 이는 ‘사서 하는 고생이며 그 고생 자체가 보상’인 순례길 걷기를 한다. <걷는 사람, 하정우>를 쓴 배우 하정우 씨에게 걷기는 “두 발로 하는 간절한 기도이자 나만의 호흡과 보폭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걷기를 어떤 도구(사색‧명상‧스트레스해소)로 사용하느냐는 자유다. 그러나 돈 안 드는 ‘만병통치약’치고는 이만한 게 없다. 그러니 우리 함께 걷고 또 걸어보자.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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