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존경하는 위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반드시 포함이 되는 인물 중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이 있다. 보통 대왕의 호칭은 특별한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붙이는 관례를 생각한다면 세종의 업적 자체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이러한 세종의 시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곳이 수원에 있어 눈길을 끄는데, 바로 광교역사공원에 자리한 심온 선생(이하 심온)의 묘다. 심온(1375~1418)은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 심씨(1395~1446년)의 아버지로, 세종에게는 장인이 되는 인물이다. 여말선초의 시대를 살았던 심온과 그의 삶을 통해 조선 태종과 세종의 시대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 관심 있게 지켜볼 장소라고 할 수 있다.

■ 관리로서의 능력과 인품이 훌륭했던 심온의 삶

심온의 가계를 살펴보면 아버지는 ‘청성백(靑城伯)’으로 봉해진 심덕부(沈德符)인데, 조선의 개국공신 중 한명이었다. 또한 심온이 ‘우부대언(右副代言)’으로 있을 당시 심온의 딸인 심씨와 충녕군(=훗날의 세종)과 혼인하며, 왕실과 인척관계를 형성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심온의 어머니 민씨는 변한국대부인(卞韓國大夫人)으로 삼고, 심씨는 ‘경숙옹주(敬淑翁主)’로 삼게 된다. 물론 당시만 해도 양녕대군(1394~1462)이 세자였던 시절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충녕대군이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양녕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면 심온 역시 견제의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광교역사공원에 소재한 심온 선생의 묘

이처럼 왕실과 인척관계를 형성한 뒤 심온은 풍해도 도관찰사를 비롯해 판한성부사(=한성부판윤),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며, 명나라로 사은사로 갈 때는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그야말로 승진의 제대로 된 예를 볼 수 있는데, 특히 주목해볼 관직이 바로 판한성부사, 훗날 한성부판윤으로 불리게 되는 자리다. 한성부판윤은 한성부를 다스리는 정2품의 관직으로, 지금으로 치면 서울특별시장 정도의 위치다. 그런데 그 위상은 장관급인 여섯 판서와 다르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자리였다. 심지어 왕들 역시 판윤에 대해 중요한 직책임을 드러내고 있고, 지금도 대선의 전초전으로 서울시장을 주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한양도성의 정문인 숭례문. 한성부판윤의 지위는 판서급에 버금가는 지위로, 현재의 서울특별시장을 생각하면 된다.

또한 관리로서 심온은 관리의 기강과 백성들의 민생에 대해 각별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1411년 풍해도(현 황해도) 도제찰사로 임명된 심온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수군첨절제사’를 파직시켰다. 또한 한재로 인한 백성들의 피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감면하고, 종자를 꾸어 내년 농사를 준비하게 하는 등 관리로서의 능력과 인품이 훌륭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노비변정도감(奴婢辨正都監)’의 책임자가 되어, 노비소유권(=노비의 신분과 상속)과 관련한 송사 과정에서의 판결, ‘환미(換米)’를 잘못 지급한 일을 빌미로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다 1418년 양녕대군의 폐세자 결정이 내려지고, 충녕대군이 세자로 삼고, 이어 양위를 하면서 태종은 상왕으로, 세종은 왕으로 즉위했다. 왕의 장인이 된 심온은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으로 그의 처인 안씨는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으로 봉해지게 된다.

■ 살아남은 이들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심온

외형적으로만 보면 왕의 장인이 된데 이어 영의정부사로 임명이 되고, 여기에 ‘사은사’의 책임자로 명나라로 가게 되었으니, 어떻게 보면 권력의 핵심에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심온에 대한 견제가 터져 나오게 되는데, 바로 태종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태종(재위 1400~1418)은 외척세력의 발호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정도였고, 자신의 왕비인 원경왕후 민씨(1365~1420)의 동생인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 역시 죽일 정도로 권력에 도전할만한 세력은 아예 싹을 밟아두는 인물이었다. 이에 따라 태종의 눈에 들어왔기에 어쩌면 심온의 비극적인 죽음은 예정된 운명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영릉(英陵). 세종의 장인이자 만인지상의 영의정에 올랐지만, 역으로 태종의 견제로 자진해야 했던 심온

문제의 발단은 한 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강상인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심온의 동생인 심청이 ‘내금(內禁) 안에 시위(侍衛)하는 사람의 결원이 많아서 시위가 허술한데, 어째서 시기에 미쳐 보충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면 군사를 어디서 보충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는데, 상위(=상왕)에서 나와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당시 태종의 양위로 세종이 즉위했지만, 여전히 병권은 태종이 가지고 있었기에 두 곳에서의 명령이 가지는 문제에 대한 일종의 담소였던 셈이다. 마치 지난 날 중국에서 장쩌민 주석이 국가주석의 권력은 넘겨줬지만, 군사주석의 권한은 한 동안 가지고 있던 것과 유사한데, 이렇게 되면 세종의 입장에서는 왕은 왕이지만, 왕의 권한을 행사하는데 크게 제약이 있게 된다.

심온 선생의 묘의 문인석과 뒤로 보이는 사당인 ‘안효사’

문제는 이러한 사단에 심온이 “군사(軍事)는 마땅히 한 곳으로 돌아가야 된다”라는 말을 했다고 무고를 당했던 것이다. 여기서 말의 해석에 대해 두 곳에 명령을 하나로 돌려야 된다는 해석으로 이해가 되어, 심온을 제거하기 위한 좋은 명분으로 활용되었다. 결국 사은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체포되어 수원부로 압송이 된 심온은 결백을 주장하지만, 그 여파가 가족들에게 미칠 것을 염려해 스스로 자진해 목숨을 끊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약속이나 한 듯 태종 역시 심온의 죽음을 끝으로 더 이상의 연좌는 하지 않았는데, 이는 소헌왕후 심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후 이양달(李陽達)을 보내 수원부(水原府)에 장사(葬事)를 지내게 했으니, 심온의 묘가 수원에 자리한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심온의 관작은 세종의 아들인 문종대에 이르러 의정부의 청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복구해주게 되는데, 이때 ‘안효공’이라는 시호를 내리게 된다.

심온 선생의 묘에 자리한 신도비

현재 광교역사공원에 자리한 심온 선생의 묘(경기도기념물 제53호)는 사당인 ‘안효사(安孝祠)’와 신도비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묘역의 외형은 크게 가운데 봉분을 중심으로 묘갈과 상석, 장명등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좌우로는 문인석 1쌍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으로, 봉분에서 바라보면 현재 광교신도시로 개발된 수원의 모습과 많은 대비를 이루고 있다. 특히 주목해볼 것 중 묘표가 있는데, 이 묘표의 비문은 안평대군이 쓴 것으로, “有明朝鮮國 大匡輔國崇祿大夫 領議政府事 領書雲觀事 靑川府院君 贈諡 安孝沈公之墓”(유명조선국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 영서운관사 청천부원군 증시 안효심공지묘)”라 새겨져 있다.

심온 선생 묘의 묘표(복제)와 상석

여기서 묘표의 내용을 보면 ‘대광숭록대부’는 정1품의 품계로, 해당 품계의 관직 중 영의정이 있다. 또한 서운관, 지금으로 치면 기상청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영서운관사’는 영의정이 겸직하던 자리였고, ‘청천부원군’의 심온의 작호였다. 이후 문종 때에 ‘안효공’의 시호를 받았기에 증시 안효공으로 불렸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묘표의 내용을 통해 심온의 생전 직위와 사후 추증된 시호가 새겨진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묘표는 보존을 위해 인근의 수원광교박물관으로 이전, 보관하고 있으며, 묘에는 복제한 묘표를 세워두고 있어 멀리서 바라보면 색깔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처럼 광교역사공원에 자리한 심온 선생의 묘를 통해 태종과 세종의 시대를 규명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 있게 바라볼 문화재이자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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