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시 부산동에 우리 문화의 뿌리 역할을 했던 경기재인청이 있었다는 것은 전통문화 전문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그곳에서 살았던 이용우 가계가 재인청의 최고 지도자인 도대방을 3대(5대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음)에 걸쳐 했다니 가히 부산동은 재인들의 마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인청의 조직과 재인들의 존재에 대해 증명할 수 있는 ‘경기도창제도청안’1책과 ‘경기재인청 선생안’1책, ‘경기도창재청선생안’2책 등의 중요한 문서들이 고 이용우 사후 부인에 의해 모두 훼손됐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조선시대 당시 왕이나 양반사회에서나 글과 문서, 그림 등으로 그나마 자료가 남아있지 세습무속인들로 천민계급이었던 이들과 관련한 별다른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다만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에 의한 현장 실사와 연구, 그 외 관련 인물들의 구전과 학자들의 연구로 대략적인 내용과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재인청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 이후 봉건적인 신분질서가 철폐되면서 사실상 존재 의미를 상실했고, 3.1운동 이후 민족문화 말살 정책을 편 일제에 의해 1920년대 최종적으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재인들의 예술은 일제시대나 한국전쟁 이후에도 최고의 고수이자 ‘근대 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충남 홍성 출신 한성준, 화성 출신 ‘전통 춤의 대가’ 이동안과 그의 스승이었던 용인의 김인호, 오산 출신 ‘경기도당굿의 대가’ 이용우,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인 승무의 보유자 천안 출신 한영숙과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인 도살풀이의 보유자 안성 출신 김숙자, 해금산조와 시나위의 명인인 평택 출신 지영희 등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왔다. 지금도 이들의 제자들이 어려운 역경에서도 재인청 예술을 익히고 보존하느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꽹과리·북·장고·피리·대금 등의 악기와 가락, 승무·태평무·도살풀이·양반춤·진쇠춤·신칼대신무 등의 춤, 판소리, 줄타기와 버나돌리기 등의 각종 재주와 놀이가 재인청에서 연희되었던 것들이다. 오늘날 공연과 관련한 무형문화재 및 인간문화재 등의 대부분이 재인청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공연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이며 또한 한류의 뿌리이자 한류의 미래라고도 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인청의 존재와 예술은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알려졌을 뿐 대중들에게까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것을 수행하는 제대로 된 지역이나 주체가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곳이 경기재인청의 본산이자 도대방 가계가 있었던 오산이다.

몇 년 전부터 이와 관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었지만 학술포럼이나 공연이 일회성에 그칠 뿐 그동안 지역사회는 이에 대한 지속적인 실천적 움직임이 없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최근 곽상욱 오산시장이 오산문화원 시무식에서 공개적으로 재인청의 복원 및 그 예술에 대해 지속적인 사업의지를 드러낸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뜻 있는 다수의 시민들이 나서 재인청 관련 민간조직을 만드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열정과 의지가 이를 추동한 측면이 커 의미는 더욱 깊다.

■ 부산동에 이용우 생가터 복원과 재인청 박물관 건립을!

재인청 예술의 콘텐츠를 익히고 보존하는, 때론 현대화하고 창조해 내는 무형적인 일과 함께 중요한 문제는 재인청의 유형적인 실체를 어떻게 만들어 내고 지역내외에 알리는가 여부이다.

이와 관련 오산은 민과 관, 정치와 문화 및 다양한 모든 부문이 힘을 모아 10년, 20년 장기비전과 목표를 수립하고 꾸준히 성과를 만들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부산동의 이용우 가계가 살았던 곳을 중심으로 생가터 복원과 재인청 박물관 설립, 재인청 예술 전습소 및 상설공연장 등을 만들어 재인청의 진정한 메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관련해서 참고할 만한 지역이 전라북도의 고창이다. 고창은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립한 신재효가 활동했던 곳으로 판소리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6만여명이 채 안되는 작은 군에 신재효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가옥을 복원하고 그 옆에 판소리 박물관과 전수관을 지어 자료를 모으고 인재를 키워내는 한편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몇 년 만에 이루어지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장기계획을 갖고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다. 재인청 사업과 경기도당굿의 이용우 가계 복원 및 그 예술을 보존 및 발전시키는 일이라면 주체하기에 따라 경기도와 국가가 적극 지원할 것이다.

이러한 유형적인 인프라 확보 노력과 함께 몇 가지가 결합돼야 진정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오산만이 할 수 있는, 예술성과 질이 담보된 재인청 축제를 창출하고 재인청 예술을 학생과 시민에게 전수하는 일이다.

예컨대 옛날 재인들이 중국의 사신이 왔을 때나 나라의 큰 행사가 벌어졌을 때 만들었던 무대구조물인 독특한 산대(山臺)를 오늘날 재연해 산대를 중심으로 재인청의 뛰어난 예술 및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높은 수준의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 공연의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은 옛날 그림이나 문헌에 나오는 것으로 어느 곳에서도 시도한 바 없고, 시도하기도 어려운 오산만의 창조적이고 독특한 문화콘텐츠가 될 것이다. 수원의 능행차와 같이 국내외 관심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문화자산을 오산도 가질 수 있다. 재인청 축제의 주제는 한해는 춤을 중심으로, 다음해는 국내외 출연진의 무속축제로, 또 다른 해는 다양한 예술장르가 결합된 연희를 펼치는 축제로, 악기 공연을 중심으로 또는 줄타기와 서커스 류의 재주를 보여주는 축제 등등으로 무궁무진하게 변형 가능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인재를 육성하고, 시민에게 재인청 예술을 익숙하고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하는 것과 맞물릴 때 성과가 극대화된다. 오산의 초·중·고와 대학교에서 학교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으로 재인청류 예술을 익히고, 전통문화 공연을 하며, 연극과 뮤지컬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전설과 신화, 또는 재인들의 희노애락을 바탕으로 재인청 관련 각종 희곡이나 시나리오, 소설이나 시 등의 문학작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매력적인 전통문화 그대로, 또는 국악의 현대화 및 다양한 장르와의 퓨전으로 새로운 창작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하다. 인구 20만의 수도권의 작은 도시 오산이 우리 문화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상상력과 콘텐츠가 넘쳐나는 문화의 메카가 되는 것은 결코 꿈이 아니다. 문화가 발전하면 교육도시 오산은 더불어 정체성이 강화된다. 오산을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와 교육이 꿈틀대는 명품도시, 한류 공연의 진정한 근거지가 되게 하자. 꿈을 꾸고, 힘을 모아 실천으로 이루어 나가면 비전은 현실이 된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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