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수도가 하남 위례성(이하 위례성)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정작 위례성이 지금의 어디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데, 현재까지 위례성은 유력한 후보지만 있을 뿐 그 실체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현재 학계에서 유력하게 보는 위례성은 서울 풍납동토성으로 이 역시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왕성의 흔적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역시 100% 맞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혼란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 역시 ‘위례성(慰禮城)’에 대해 “위치가 분명하지 않고 이름만 남아 있는 지명”에 포함시켰다.

이성산성의 남문. 이성산성은 이성산의 정상부에 축성된 성으로, 하남시 춘궁동과 초일동, 광암도에 걸쳐 있다.

이처럼 위례성은 실전된 채 오랜 시간이 흘렀고, 이에 따라 위례성의 후보지로 여러 곳이 거론이 되었는데, 우선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 스님은 천안 직산을 위례성으로 봤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는 온조왕이 이곳에서 경기도 광주로 천도했다고 하고 있어, 현재 지역의 향토사학 쪽에서는 백제의 초도로 위례성으로 밀고 있는 곳이다. 반면 <아방강역고>를 저술한 정약용은 광주고읍을 위례성으로 봤는데, 광주고읍은 지금의 하남시 춘궁동 일대로,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하나의 유력한 설로 거론이 되었다. 실제 지금도 춘궁동 일대에는 ‘궁안마을’과 같은 왕궁과 관련한 지명이 있고, 인근에 ‘천왕사지(天王寺址)’나 ‘동사지(桐寺址)’ 등의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주목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위례성의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는 하남 이성산성이 정말 백제의 성이 맞는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 백제가 아닌 신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하남 이성산성

하남 이성산성은 행정구역 상 하남시 춘궁동과 초일동, 광암동에 걸쳐 있는 이성산(209.8m)을 중심으로 쌓은 성곽이다. 산성의 형태는 ‘포곡식(包谷式)’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성의 둘레는 1,925m다. 이성산성의 축성연대는 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기에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을 통해 그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위례성을 춘궁동 일대로 비정했을 때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이 되는 이성산성이지만, 문제는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 중 백제의 흔적은 극히 미미하다는 점이다. 물론 백제의 토기 편이 일부 출토되기는 했지만, 이것만 가지고 백제의 왕성인 위례성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성산성의 동문지

제2저수지의 모습

오히려 출토되는 유물을 통해 이성산성이 신라 진흥왕의 북진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기존의 성을 보수한 형태로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 <삼국사기>를 보면 553년 신라 진흥왕이 백제의 동북쪽 변경을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했다고 했는데, 이는 이성산성 내에서 출토된 유물 중 해당 시기의 경주의 유물과 상당히 유사성을 드러낸 것에서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성산성은 진흥왕의 북진으로 설치된 신주의 거점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재미있는 점은 이때 신주의 군주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김무력’인데, 그는 신라에 의해 멸망한 금관가야 구형왕의 아들로, 훗날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김유신’의 조부가 되는 인물이다.

대형건물지의 모습. 앞뒤로 장방형의 큰 규모의 건물지가 자리하고 있다.

대형건물지 앞에 위치한 12각 건물지

한편 이성산성에서는 고구려의 흔적도 확인이 되고 있는데, 바로 목간의 출토가 그것이다. ‘목간(木簡)’이란 쉽게 지금의 종이와 같은 역할을 했는데, 당시만 해도 종이는 매우 귀했기 때문에 대개 목간이나 죽간의 형태로 문서를 남겼다. 바로 이러한 죽간 중 고구려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는데, 바로 고구려의 관직인 ‘욕살(褥薩)’이 기록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욕살은 지금의 지방행정을 책임지는 자리로, 앞서 신주의 군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신주 이전에 이성산성이 고구려의 지방 거점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함께 출토된 고구려 ‘자(尺)’를 비롯해 장고류의 고구려 악기 등은 이를 뒷받침해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성산성 일대를 중심으로 삼국이 서로 뺏고 뺏기는 치열한 요충지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삼국의 치열한 항쟁의 장소인 하남 이성산성

이성산성에서 또 하나 주목해볼 점은 제사의례가 있었다는 점인데, 이는 이성산성에서 발견된 토제마와 철제마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이성산성에서 확인되는 건물지 중 ‘8각건물지’의 형태가 확인되었는데, 이 같은 건물지는 경주 나정을 비롯해 화성 당성, 용인 할미산성 등에서 확인된 바 있다. 외형상 이 같은 형태의 건물지는 제사 등의 특수한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어, 이성산성에서는 제사의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밖에 대형건물지를 비롯해 상당한 수의 건물지가 확인되고 있고, 성 내부에 저수지 3개소도 확인되는 등 이성산성의 전체적인 외형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제1저수지의 모습

장방형의 건물지와 9각건물지

최초 이성산성은 백제의 위례성의 후보지로 거론이 되어 왔기에 지난 1986년부터 진행된 이성산성의 발굴조사 결과는 다소 의외였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을 비롯해 출토되는 유물의 양상은 대부분 신라의 유물이 압도적으로 많다. 따라서 고고학적으로 볼 때 이성산성을 백제의 위례성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학계에서도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는 상당수의 유적들이 신라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9각건물지. 제사의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건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낸 천단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8각건물지. 마찬가지로 제사의례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신에게 제사를 지낸 사직단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물론 향후 이성산성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백제의 유물이나 관련 흔적이 나올 가능성도 있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점만 보자면 이성산성은 단순히 백제의 성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삼국이 서로 치열하게 쟁탈을 벌인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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