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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무봉산을 중심으로, ‘신빈김씨묘역’과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03.11 01:00

화성시청이 소재하고 있는 ‘남양(南陽)’은 화성시의 전신인 옛 남양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현재 화성시청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남양동과 북양동에 걸쳐 무봉산(201.5m)이 자리하고 있다. 특이하게 화성시에서만 무봉산은 3곳이 있는데, 만의사가 있는 동탄과, 장안면 석포리에도 같은 이름의 산이 있다. 조선시대의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남양도호부 편을 보면 ‘비봉산(飛鳳山)’이 “부(남양도호부의 관아: 지금의 남양초등학교, 남양 풍화당)의 동쪽 7리 되는 곳에 있으며, 진산(鎭山)이다”라고 적고 있다.

봉림사 극락전의 전경

그런데 이 비봉산에 ‘봉림사(鳳林寺)’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어, 무봉산의 옛 이름이 비봉산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무봉산은 옛 남양도호부의 진산이자 나름의 상징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지금은 ‘무봉산 둘레길’이 조성되어 산책 코스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둘레길 구간에 ‘신빈김씨묘역’과 ‘봉림사’가 자리하고 있어 역사와 문화의 측면에서도 주목해볼 장소라고 할 수 있다.

■ 무봉산 둘레길에서 만날 수 있는 역사의 흔적 ‘신빈김씨묘역’

무봉산 둘레길에서 볼 수 있는 문화재 중 ‘신빈김씨묘역’이 있다. 위치는 화성시청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어, 찾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다. 또한 신빈김씨묘역은 무봉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에 자리하고 있어, ‘신빈김씨묘역-무봉산 둘레길-봉림사’로 가는 코스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앞전에 연재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신빈 김씨(1406~1464)는 세종의 후궁으로 본래 공노비 출신이었다.

무봉산 둘레길의 역사문화자원 중 ‘신빈김씨묘역’

그러다 13살에 입궁해 세종(재위 1418~1450)에게 승은을 입었고, 이후 내명부 품계 상 가장 높은 ‘빈(嬪)’으로 봉해졌다. 또한 세종과의 사이에서 6남 2녀를 낳는 등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신분 상승의 예를 보여주었기에 흔히 신빈 김씨를 ‘조선판 신데렐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남양에 살 때 지인과 대화를 하던 중 신빈김씨묘역과 관련한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이때 지인의 말로는 이곳 사람들은 신빈 김씨의 묘를 ‘애기능’으로 부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무봉산 둘레길의 등산로

의외로 애기능이라는 표현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정조의 후궁인 원빈 홍씨 역시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지금의 고려대학교 내에 인명원(=원빈묘)가 조성되었다. 이러한 원빈 홍씨의 묘를 당시 애기능이라 불렀는데, 이러한 흔적은 애기능 캠퍼스라는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신빈김씨묘역은 무봉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좌우에 신도비와 묘역이 배치되어 있어, 무봉산 둘레길을 걸으실 때 주목해봐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 무봉산 둘레길을 따라 걷고,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도 보고

‘신빈김씨묘역’을 뒤로하고 무봉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몇 가지 ‘단상(斷想)’을 함께 보게 된다. 우선 ▲시민들의 건강을 위한 여러 운동 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 ▲남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둘레길을 걷다 보면 지뢰 조심 문구가 적힌 경고문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뢰 조심’의 경우 휴전선 인근에서나 볼법하다는 점에서, 과거 치열했던 전쟁의 흔적과 현재의 평화로운 일상의 묘한 대비를 바로 무봉산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무봉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지뢰 조심’ 경고문
인위적인 굴. 광산 채굴의 흔적으로 보인다.

한편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봉림사(鳳林寺)’에 도착하게 된다. 화성시에 있는 사찰 중 용주사와 더불어 보물을 간직한 사찰로,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훼손과 중수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히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980호)의 경우 개금 과정에서 나온 복장유물을 통해 고려 공민왕 시기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복장유물 자체도 별도의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지금은 ‘목조아미타불좌상복장전적일괄(보물 제1095호)’이라는 이름으로 용주사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이처럼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통해 고려 시기에도 봉림사가 유지되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문화재다.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수인을 통해 불상의 구분이 가능하며, 복장 유물을 통해 고려 공민왕 때인 1362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불상을 구분하는 데 있어 손동작인 ‘수인(手印)’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 석가모니불의 경우 오른손은 무릎으로 내리고, 왼손은 펴고 있는 모습의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또한 비로자나불의 경우 가슴에 두 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감싼 모습의 ‘지권인’의 수인을 하고 있으며, 아미타불의 경우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처럼 ‘아미타구품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인을 통해 불상의 구분이 가능한 것이다. 한편 봉림사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삼성각과 요사채, 설법전 등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무봉산 둘레길’의 역사와 문화 자원으로 손색이 없는 장소라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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