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소설가의 일』 p.19 중 김연수)

1994년 ‘작가세계’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가 된 김연수 작가. 2019년 3월 14일 저녁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줄의 문장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하였다. 처음 소설을 썼을 때는 소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장편소설이 되어버렸고,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은 욕망으로 투고를 하였는데 당선까지 되었다. 소설이 당선되고 난 뒤에야 ‘소설가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김연수 작가는 소설을 쓰는 일과 달리기가 비슷하다고 한다. 단거리 달리기는 힘을 갖추고 목표를 정해서 뛰면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달려야 한다. 하지만 매일 달리기를 하는 행위는 수동적이다. 계획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체념하듯 꾸역꾸역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20대가 끝날 무렵, 소설가 타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소설가 흉내를 그만내자고 생각했다. 그 때 2권을 펴냈는데 그 이후 ‘소설가가 될 만큼 능동적인 사람이 못 되는 것 같다’고 느껴서 소설가가 되는 걸 그만두고 잡지사에 취직을 하였다. 잡지사에 다닐 때 달리기를 시작했다. 소설가가 달리기를 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매일 달려야지 달리기가 된다. 날씨가 좋을 때 한 번 뛰고 쉬다가 또 뛰고... 이런 건 달리기가 아니다. 매일 달리기를 시키면 하기 어려워진다. 단거리는 능동적이다. 힘을 갖추고 목표를 정해서 뛰면서 옆에 사람보다 빨리 뛰려고 하면 된다. 체력을 비축해서 최상의 컨디션에서 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달리기는 수동적인 운동이다. 질질 끌려가듯 체념하면서 달리는 일이 어쩌면 소설을 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소설을 쓰기 위해 계획을 하고 목표를 정하지만 매일 좌절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매일 꾸역꾸역 달리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다 보면 되더라고요.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좌절감을 느끼고 자신에 대해서 회의하는 일로 글을 쓰게 됩니다.”

김연수 작가는 글자 하나 끄적이고 난 뒤 쓸 말이 없어서 침묵하고, 또 생각이 나서 한 줄을 쓰면서 이어가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라 한다. 문장을 하나 쓸 때마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고 또다시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순간 백석의 시 같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백석에 대한 소설을 한 편 쓰는 것이 바람인데, 1950년대 이후 북으로 갔던 시인이기 때문에 자료가 많지 않다. 월북된 이후 40년을 더 살았는데 백석은 계속 러시아어 번역 일과 시 쓰는 일을 했다. 당에서는 문학 역시 사회주의적인 인간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에 맞지 않는 문인들은 숙청하였다. 백석은 다행히 죽음은 면했지만 당에서 못마땅하다는 평가를 받고 삼수군 축산협동조합에 배치되어 노동자로 살기도 했다.

“백석은 90년대까지 살고 돌아가셨어요. 현실에 적응하며 하루하루 견디면서 살았겠죠. 시인으로는 실패한 인생 같은 시를 남겼어요. 그렇다고 문학적으로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기 힘들죠. ‘흰 바람벽이 있어’와 같은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인데 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백석을 생각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려 해요.”

김연수 작가는 “소설가는 자신이 쓸 수 없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쓸수록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발견하는 게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잘 모르겠어’라는 태도를 평생 반복적으로 연습해나갈 때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조금이라도 생기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레 강연을 마쳤다.

작가적인 천부적 재능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김연수 작가가 말한 억지로 꾸역꾸역 달리기하듯 쓰는 일이 어쩌면 현실적인 소설가의 삶일지 모른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대단한 목표를 세우고 이뤄나가는 성공을 꿈꾸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 실패한 것들이 더 많다. 하지만 백석처럼 생을 이어나갔던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소설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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