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화성시 남양읍에 처음 갈 때 수원역에서 버스를 타고 갔던 적이 있다. 남양읍으로 가는 도중 매송면 어천리를 지났는데, 13년 전 처음 마주했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도 크게 변함이 없어 보인다. 인근의 수원이나 봉담, 동탄 등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과 비교해보면 세월의 변화마저 느낄 수가 없는 곳으로, 마치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 새롭게 조성되는 수인선 공사 구간만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어천리는 ‘어랑천’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매송면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어천정

이를 보여주듯 인근에는 어천저수지와 함께 매송면행정복지센터 맞은편으로 다정마을 큰 우물(=어천정)이 복원되어 있으며, 지금도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우물제사와 당제가 열리고 있다. 한편 그저 지나는 길에 위치해 있기에 무심히 지나쳤던 매송면, 그런데 그 때는 지나쳤던 이정표 중 붉은 색 표시로 우성전, 우하영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나름의 시대상과 상징성을 담고 있다는 점으로, 접근성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덜 하다는 점에서 두 차례에 걸쳐 추연 우성전과 취석실 우하영의 묘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 숙곡리에 위치한 추연 우성전의 묘를 통해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추연 우성전(1542∼1593)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경선(景善)’으로도 불렸다. 우성전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인물로, 우성전의 묘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선 우성전이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붕당정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조선 선조 대에 이르면 사림이 정국의 핵심세력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사림 내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당파가 생겨나고, 당쟁의 격화로 인한 폐단이 드러난 시기였다.

덕수궁 돌담길. 정동은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심의겸의 집이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인으로 불려졌다.

최초 사림파의 분열은 ‘이조전랑(吏曹銓郞)’을 누가 임명하느냐를 두고 벌어졌다. 관직 자체의 품계는 낮지만, 삼사(三司,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관리를 임명할 수 있고, 자신의 후임자를 추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로 인식되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방송통신위원장의 임명을 두고 여, 야간 벌어지는 정치적 논쟁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조전랑을 두고 당시 김효원과 심의겸이 관계가 나빠지자 이에 서로의 지지 세력을 규합해 사림파는 분열이 되었다. 당시 김효원의 집이 ‘낙산(駱山)’에 있었기에 동인, 심의겸은 ‘정동(貞洞)’에 있었기에 서인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남인의 영수였던 서애 류성룡의 묘

이때 우성전은 동인으로 분류가 되었다. 하지만 동인은 정여립의 난(1589)으로 인한 ‘기축옥사(己丑獄事)’로 많은 인물들이 희생되어야 했다. 이를 주도했던 이가 바로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로, 이후 동인과 서인의 사이는 더욱 나빠지게 된다. 그러다 세자 문제로 선조의 눈 밖에 난 송강 정철의 처리를 두고 동인에서 강경파(=북인)과 온건파(=남인)으로 분리가 되는데, 이때 동인의 세력이 분리되면서 우성전은 남인으로 분류되었다. 당시 남인은 류성룡을 영수로 김성일과 이덕형, 이원익 등이 있었다. 이러한 당쟁의 격화에 휘말려 우성전은 삭탈관직을 당하며 중앙무대에서 멀어져 갔다.

추연 우성전의 신도비

추연 우성전의 묘. 부인인 양천 허씨와의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조직, 양화도 전투와 행주대첩 등에 참여하며 공을 세우게 된다. 이러한 공적으로 인해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이 되었으며, 당시 ‘추의군(秋義軍)’으로 불리며 활약하게 된다. 한때 왜군을 쫓아 의령까지 내려갔으나, 과로로 인해 경기도 부평(=현 인천시 부평)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조한진(趙漢璡)이 정조에게 우성전에 대한 증직을 건의하고, 이에 정조는 우성전을 이조판서로 증직하고 충강(忠康)이라는 시호를 내리게 된다.

묘표와 함께 상석, 향로석이 배치되어 있다.

배면에서 바라본 추연 우성전의 묘

이러한 우성전의 묘(경기도문화재자료 제121호)는 매송면 숙곡리에 자리하고 있다. 어천리에서 차를 타고 이동할 경우 불과 5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로, 묘역으로 가는 입구에는 성호 이익(1681∼1763)이 비문을 짓고 이상천이 전액을 쓴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다. 신도비를 지나면 이내 이정표를 만날 수 있는데, 묘역은 단양 우씨의 묘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묘역은 크게 부인인 양천 허씨의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가운데 묘표와 상석, 향로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 1쌍이 세워져 있다. 우성전의 묘를 통해 붕당정치와 임진왜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장소가 들려주는 역사의 흔적을 주목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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