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변화와 속도에 지친 사람들은 점점 전통과 느림을 찾는다. 중국 청나라 시대 누각에 앉아 수로에 비치는 달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일. 나룻배 젓는 뱃사공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바로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는 중국의 대표적 수향도시인 우전(烏津)에서는 지금도 가능한 일이다. 송(宋)·명(明)·청(淸) 시대의 문인 및 학자에서부터 근대 중국문학의 거두 마오둔(茅盾)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고장인 우전은 상하이에서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현재 인구 6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우전은 약 7,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당나라 말 무법천지의 혼란 속에 있었던 우전은 관의 지배력이 닿지 않았다. 그 때 우(烏)씨 성을 가진 장군이 마을을 보호해 주기 시작하였고, 몇 년 후 우 장군은 도적들과의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우전’이라는 마을의 유래는 이러한 우 장군의 성을 따서 부르게 됐다고 한다. 또한 수나라 양제 시대 건설한 운하를 따라 생긴 마을 중 하나인데, 집집마다 온통 까마귀처럼 검은색을 칠해 놓아서 까마귀 ‘오(烏)’를 사용하여 우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우전은 도시라기보다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다. 국가 5A급 관광 지역으로 강남 6대 ‘수향고진(운하 등과 함께 물가에 있는 마을)’ 중 한 곳이다. 1991년 저장성 역사문화명소로 지정돼 1999년부터 마을 보존과 관광개발이 이뤄졌다. 놀라운 것은 2014년 11월 제1회 세계 인터넷 대회를 시작으로 ‘세계 인터넷 대회’의 영구 개최지로 선정된 점이다.

매년 11월이면 열리는 이 대회 덕분에 인터넷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1300년 역사의 이 마을은 전 세계 인터넷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곳이 됐다. 대회 기간이 되면 우전의 비좁은 골목길과 허름한 차관(茶館)에서 중국 인터넷 업계의 거물을 수시로 만날 수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을 비롯해 중국 최대 메신저 텅쉰(텐센트)의 마화텅,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의 리옌훙 등 중국 인터넷을 이끄는 BAT(바이두·알리바바·텅쉰)의 총수가 모두 우전에 모인다. 과거 중국의 무협지 속에서 각 문파의 고수들이 무림대회에 참석하여 경합을 이루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각종 인수합병 건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중국 인터넷 업계의 판세를 읽는 자리가 된다. 거기다가 중국의 인터넷 쇼핑몰들이 대대적인 할인 행사까지 벌이는 시기가 된다.

뿐만 아니라 2017년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세계 랭킹 1위 커제(20) 9단의 첫 번째 대결을 벌인 곳도 우전이다. 우전이 위치한 저장성은 중국 전설상 바둑 발원지로 알려진 란커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둑과 인공지능의 접점을 찾는다는 생각에 우전이 주목받은 이유일 듯하다.

우전에 가서 무엇을 꼭 해보아야 할까? 사실 운하 관광 코스인 우전은 ‘수로 관광’이 핵심이다. 서쪽 코스인 서책(西柵)과 동쪽 코스인 동책(東柵)을 둘러볼 수 있다. 서책이 더욱 화려하고, 볼거리는 풍성하다. 또한 동책의 경우 아직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소박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나룻배를 타고 (1인 60위안) 수로를 따라 30분 가까이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1,000년 이상 된 수로의 돌다리들, 수로변의 전통가옥 등은 독특한 볼거리다. 서책(西柵)에 있는 ‘백련탑’ 찻집거리에는 삼국지에서 유명한 장수인 관우상이 있다. 재물의 신인 관우 앞에서 재운을 빌고, 청나라 시대의 골목길을 둘러보는 일,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는 것은 필수다. 청나라 말기 모습을 간직한 약국, 청 말기 영업을 시작한 이발소도 있고, 1903년 설립된 우체국까지 있다. 골목 상점에는 직접 염색을 하거나 베틀을 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중국 영화 속에 나오는 듯한 오래된 거리를 걷고, 배를 타면서 수로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전을 즐기는 방법이다. 또한 서책 내에는 게스트하우스 및 호텔도 여러 곳 있다. 우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야경을 관람하는 것이 좋다. 밤이 되어 더욱 아름다웠던 우전은 중국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을 머릿속에 그려 놓았다.

개발이 능사는 아니다. 기계화 및 현대화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옛것이라는 점을 우전에서 배운다. 우전의 좁은 골목을 헤매면서 보냈던 시간이 중국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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