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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은 공평한가
고재현 교수(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 승인 2019.04.08 08:39

“Oh moon, my moon, 가지려는 게 아냐, 네가 나에게 이리 눈부신 건, 내가 너무나 짙은 밤이기 때문인 걸.” 2018년 인기를 끌었던 한 드라마에 나온 ‘디어문’이란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이 노래의 작사가는 한 방송에 출연해서 “달빛이 되게 공평하다”란 생각을 하며 노랫말을 지었다고 한다. 달빛은 “밝을 때보다 어두울 때 더 잘 보이는” 빛이고 “어두운 곳에서도 구석구석까지 받을 수 있고” 그래서 “공평한 빛”이란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럼 달빛은 정말 공평한가? 시적 감성으로 탄생한 아름다운 가사에 과학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노랫말을 배태할 정도의 감수성에는 정직한 관찰력도 함께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눈은 놀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빛 감지기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 속 희미한 별빛에서부터 (순간적으로) 밝은 태양빛까지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눈이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가장 희미한 빛과 순간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태양 빛 사이의 밝기는 약 ‘일 대 일조’ 정도로 차이가 난다. 인간의 눈이 손상을 입지 않으면서 연속적으로 볼 수 있는 최대 밝기와 비교해 봐도 약 ‘일 대 천만’ 정도로 변하는 밝기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한 순간에 이 정도로 변하는 밝기를 모두 지각할 수는 없다. 어떤 조명 환경 하에 적응된 눈은 주변의 사물을 약 일 대 백 정도,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넓은 영역의 밝기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보이는 전경에서 구분할 수 있는 밝기 영역을 넘어서서 보다 더 밝은 장면은 그냥 밝음이고 이보다 더 어두운 곳도 그냥 어둠으로만 느낀다. 만약 그 상태보다 더 어둡거나 더 밝은 곳으로 이동하면 새로운 환경에 맞춰 눈이 다시 적응하면서 일 대 백 정도의 밝기 단계로 주변을 파악하고 인식한다. 이런 적응 과정을 단계적으로 거치게 되면 우린 어둠 속의 극히 희미한 물체로부터 밝은 대낮의 태양빛까지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깜깜한 방에서 갑자기 조명을 켜는 상황처럼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밝은 곳으로 변했을 때 눈은 잠깐 눈부심을 느끼지만 몇 초가 지나면 밝은 환경에 바로 적응한다. 이를 명순응(明順應)이라 한다. 반면에 밝은 운동장에서 놀다가 깜깜한 창고로 숨어 들어가는 경우처럼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들어갔을 때의 눈의 적응 과정, 즉 암순응(暗順應)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어두운 공간에 들어간 후 눈은 우선 밝은 환경에서 작동하던 원추세포를 사용해 어둠을 인지하려 한다. 5~10분 정도 지속되는 이 과정에서 원추세포의 감도는 계속 높아진다. 만약 갇힌 공간의 환경이 원추세포의 최고 감도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어둡다면 그 다음에는 감도가 훨씬 높은 막대세포가 역할을 이어받는다. 어둠의 상태에 따라 막대세포는 30분~1시간 정도의 시간 내에 암순응 과정을 거치며 어둠 속 사물을 판별할 정도로 감도를 높인다. 막대세포의 최대 감도에서 인간의 눈은 완벽한 어둠 속에서 20~25 km 떨어진 곳의 촛불을 느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눈의 적응은 밝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시각 체계는 색순응(色順應) 과정을 통해 주변의 지배적인 색상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즉 조명의 스펙트럼이 달라져 물체의 반사 스펙트럼의 변화가 심하더라도 실제 지각되는 물체의 색은 조명에 따라 큰 차이가 나지 않도록 적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푸르스름한 느낌의 차가운 백색 조명 아래에서나 노란색을 띠는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나 A4 용지는 거의 동일한 백색으로 보인다. 이런 색순응 과정을 통해 우린 다양한 조명 환경에서도 거의 일관되게 보이는 색상의 도움을 받아 물체를 구분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색 항상성(color constancy)’이라 부른다.

이제 다시 달빛을 노래한 가사로 돌아가 보자. 달빛은 어두울 때 더 잘 보일까? 맞는 얘기다. 우린 태생적으로 어둠 속에서 밝기의 변화를 더 잘 인지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아마 먼 과거에 깊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맹수들을 피하며 생존했던 환경이 키운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10 정도의 밝기 속에서 1이나 2가 바뀌는 건 쉽게 인지할 수 있지만 동일한 변화를 1000 정도의 밝기 속에서 알아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낮에 하늘에 떠 있는 낮달은 의식적으로 찾아 봐야 하지만 어두운 밤하늘에서 달을 찾는 건 누워서 떡 먹기만큼 쉽다. 그런 달빛이 세상을 비출 때 도로나 지형을 따라 만들어지는 빛의 길은 어둠 속에서 선명히 보일 것이다. 이런 눈의 비선형적 반응은 디스플레이의 설계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로써 객관적 밝기와 눈의 반응성 사이의 관계를 고려한 보정 작업이 반영된다.

달빛은 공평한가? 잘 모르겠다. 태양빛은 지구 위 생명의 근원이다. 태초의 생명을 만들고 지금처럼 번창시킨 원동력이자 위대한 에너지의 보고다. 그러나 태양은 인간의 접근을 허용치 않을 정도로 힘이 센 존재였다. 인간의 주목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밝은 존재였다. 세계의 대부분의 문화에서 태양을 숭배하고 태양신을 섬기던 역사와 신화가 남아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태양의 힘을 살짝 빌려 어둠을 구석구석 비추는 달빛은 우리의 먼 선조들에게는 사방이 깜깜한 한밤중에 의지해야만 하는 유일한 구원의 손길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달빛은 분명 공평했을 것이고 지금도 공평하다.

하나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달빛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밤하늘의 이정표였을 별빛도 찾지 않는다.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빛의 공해가 희미한 별빛마저 감춰버리는 시대다. 조명의 도움으로 깊은 밤까지 생활 무대를 확장했으나 밤의 주인공을 더 이상 찾지 않는 시대. 할머니를 돌보며 외롭게 버티는 주인공에게 디어문의 멜로디는 자신처럼 “외톨이의 존재”인 달을 밤동무 삼고 싶어 부르는 노래이자 지금도 고된 삶 속에서 “그늘진 얼룩”을 가지고 사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일 것이다.

고재현 교수(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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