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몸을 단장하고 회사나 학교 혹은 다른 이유로 외출을 준비한다. 딱히 일정이 없는 사람들도 그들 나름의 계획에 따라 일상을 산다. 매일 이러한 일상을 살다보면 나름의 시간표가 생기기 마련이다. 씻는데 몇 분, 옷 입는데 몇 분, 식사하는데 몇 분처럼 일정을 나눈다. 처음 적응하는 것은 힘들지만 익숙해진다면 어렵지 않게 이를 지켜간다.

일반적인 경우 대부분의 성인이라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일상을 보낸다. 매일 출근 준비는 스스로 한다. 짧게는 30분, 넉넉하게 잡아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일을 할 때도, 퇴근해서도 마찬가지다. 딱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살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자립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자립’의 사전적인 의미는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이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로 봤을 때 스스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면 자립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앞서 나온 일상의 사례들도 사전적 의미에서는 ‘자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립을 검색해보면 ‘독립’이 유의어로 나온다. 독립의 의미는 ‘다른 것에 의존하는 일 없이 독립해 있는 것’이다. 자립과 독립의 차이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이웃하고 있는 중증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장님의 일화를 접했다. 이분은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혼자서 일상을 살고 있는 분이다. 내용은 사촌누나가 보내준 반찬들을 퇴근 후 혼자 정리하며 장애인 당사자로서 느끼는 소회가 담겨 있었다. 반찬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꺼내먹기 좋게 소분하는 일을 했다. 비장애인이라면 10분이면 할 일을 1시간 4분이 걸려서야 끝이 났다. 어쨌든 다했고 혼자 했으니 이것을 ‘자립’이라고 할 수 있을까란 질문이 이어진다. 그리고 ‘자립생활’에 대한 당사자의 관점을 이야기 한다.

“장애인 자립생활이라는 것은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외출을 위해 1시간 동안 옷을 입어야 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자립생활이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자립’이라는 일방적인 개념에 갇혀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모른다. 혼자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어린아이 시절부터 강요받는다. 이미 사전에서 말하는 ‘자립’에 대한 정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지(四肢)가 없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닉 부이치치’의 장애 극복 스토리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하다. 많은 사람들이 닉 부이치치의 노력과 “장애는 불편할 뿐,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 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무엇이든 혼자 하려고 노력하며 심지어 윈드서핑까지 도전하는 그의 삶은 많은 비장애인들에게 조차 귀감이 된다. 그는 존중 받아 마땅하지만 다른 한편에 불편함이 존재한다. 과연 모든 장애인이 ‘닉 부이치치’처럼 될 수 있을까?”

자립과 독립 그리고 극복이라는 말로 장애가 포장되며 이를 이루는 극소수의 장애인들에게 찬사가 돌아간다. 그리고 그 극소수의 극복 사례를 이야기 하며 다른 장애인들은 노력하지 않아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자립의 일방적인 개념이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폭력이 되고 있는 이유다.

‘자립’은 앞의 일화처럼 ‘상식적 수준에서 삶을 유지 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혼자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이 혼자서 하는 것처럼 이와 비슷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자립을 지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존립’은 ‘생존하여 자립함’을 뜻한다. 사람이 생존한다는 것, 그저 살아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할 인권의 가치다. 그래서 자립은 인간의 존엄을 포함한 ‘존립’이 되어야 한다.

이건일(당진북부사회복지관 관장)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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