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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음악의 아버지’ 평택의 지영희
조백현 발행인 | 승인 2019.05.06 12:06
(사진=지영희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지영희는 1909년생으로 평택의 자랑이자 국악을 현대화시킨 한국 전통음악의 선구자이다.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의 명인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예능보유자였다. 부인 성금연 역시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였으니 이들은 평생의 음악적 동지이자 한국 전통음악의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과거 우리나라의 공연예술은 세습무 집안에서 담당했다. 지영희 집안 역시 세습무가로서 아버지 지용득은 피리와 호적에 뛰어났으며, 어머니 김기덕은 이름난 미지였다. 이러한 집안의 분위기에서 지영희는 민속 및 민족음악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지영희는 엄청난 학구열로 해금과 피리, 대금뿐만 아니라 태평소, 장구 등 거의 모든 악기를 섭렵하면서 최고 수준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소리, 농악, 춤, 남사당패 종목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속예술의 전반적인 내용을 익힌 당대 최고의 예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그동안 반주악기로만 머물었던 해금, 피리, 태평소와 같은 악기를 독주악기로 발전시켰는데, 악기로 독주를 하려면 그에 맞는 음악이 필요했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지영희류의 해금산조, 피리산조, 시나위이다.

지영희는 과거 민속음악, 무속음악의 전승이 구음으로 전해져 계승과 발전에 한계가 많았던 상황에서 직접 나서 오선보에 기록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보했다. 1960~19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미신타파를 외치면서 국악의 뿌리였던 무속음악, 민속음악이 미신의 범주에 들어가 소멸될 위기에 처하게 된 상황에서 지영희의 안목은 정말로 대단했다고 생각된다.

지영희는 또한 1960년 개교한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와 이후의 학생국악관현악단,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창립(1965년)의 주역이다. 국악현대화 작업이자 국악기로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려는 시도였다. 실제로 그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제1대 악장이자 상임지휘자로 활동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예술의 주축이 되는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내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고 창작해 낸다. 전통춤을 현대화해 무대에 올린 이가 한성준이었다면 우리 음악을 현대화해 무대에 올린 이는 지영희로 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악기가 낼 수 없는 베이스음을 얻기 위해 악기제작소를 만들어 악기 개량을 시도하는 등 지금 국악 현장에서 사용하는 공후, 비파, 대해금 같은 다양한 악기들이 지영희의 피나는 고뇌와 노력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하니 대단할 따름이다.

한편, 청년기를 지나 장년기에 들어선 지영희는 1937년 경성으로 올라와 ‘조선음악무용연구소’에서 당시 한성준, 최승희 등 당대 최고의 거장들과 어울리며 기악연주 지도 및 무용음악의 반주자로 국내외로 활발한 활동을 했으니 이러한 거장들과의 교류 및 공연 활동이 지영희의 성장과 창작욕구의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레코드사에서의 음반작업과 라디오와 방송국의 방송활동, ‘벙어리 삼룡’, ‘월하의 공동묘지’, ‘장희빈’ 등 신상옥 감독의 사극영화 대부분의 배경음악을 맡는 등 영화음악 작업도 활발히 하는 등 국악의 대중화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국악계의 갈등과 민속음악에 대한 천대 등을 이기지 못하고 지영희가 1974년 부인 성금연과 함께 하와이로 이민의 길을 택하게 되고,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의 지위까지 잃게 됐다는 점이다. 지영희는 하와이 이민 후에도 하와이 대학 강연과 제자들에게 악보와 연주 테이프를 보내는 등 국악발전을 위해 애써오던 중 1980년 2월 2일 73세의 나이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한 채 하와이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다.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의 명인이자 민속음악 및 무속음악의 채보, 작곡, 교육, 춤, 영화음악, 악기개량, 국악관현악단 결성과 국악현대화 등 지영희의 민속 및 민족 음악사에 남긴 족적은 세월이 흐를수록 그 의미와 위대함을 더욱 인정받게 될 것이다. 평택시가 그의 업적을 잘 기려 그가 남긴 민속, 민족 문화유산을 더욱 발전시키길 바란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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