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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성의 특징을 볼 수 있는 연천 호로고루, 임진강에 세워진 이유는?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05.07 08:29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삼국시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고구려(高句麗)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구려를 떠올리면 광활한 영토와 영웅적인 기상을 떠올리곤 한다. 실제 삼국 중 중국 쪽의 국가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하며 성장했던 고구려는 민족사에 있어 방파제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고구려의 영토가 북한과 중국 쪽에 있다 보니 고구려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 남한 내에서 고구려의 유적은 백제나 신라 등에 비해 그 수가 많지가 않기에 고구려는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연천 호로고루의 전경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고구려의 유적 중 대표적인 것이라면 단연 충주에 위치한 충주고구려비를 들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한 고구려의 금석문으로, 이를 통해 당시 고구려를 고려로 불렀다는 사실과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유물이다. 또한 서울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 사이에는 아차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산의 정상 부근에는 고구려가 쌓은 성의 개념인 보루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아차산 시루봉 유적에서는 ‘대부정대부정(大夫井大夫井)’이 새겨진 옹기가 출토되어 제사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충주 고구려비. 우리나라에서 확인되는 유일한 고구려 금석문이다.

한편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일대의 임진강을 따라 연천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등의 고구려성이 다수 확인된다. 이는 삼국시대의 후기에 접어들면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선이 임진강을 경계로 했기 때문으로, 고구려에 있어 남쪽 최전방이었다. 실제 고구려의 성이 위치한 지역은 교통로 상 중요한 요충지에 해당했다는 점에서 임진강을 따라 늘어선 고구려의 성을 통해 고구려의 후기 국경선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이러한 고구려의 성 가운데 연천 호로고루를 통해 고구려 성의 특징과 시대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 고구려 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연천 호로고루

우선 연천 호로고루의 이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쉽게 ‘호로+고루’가 합쳐진 말로, 호로에 대해 호로병을 닮았다는 의미 혹은 마을을 상징하는 ‘홀’로 보는 견해가 있다. 여기에 성을 상징하는 ‘고루’가 합쳐진 것이 바로 호로고루다. 연천 호로고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구려 성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구려는 역사 그 자체가 이민족과의 전쟁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전쟁이 빈번했다. 따라서 이를 방어하기 위한 성의 축조는 필수적이었다. 때문에 고구려에 많은 성이 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연천 호로고루의 동벽. 역삼각형 형태로 육로로 이어진 통로에 성벽을 쌓았다.

실제 고구려의 멸망 과정을 보면 고구려의 국토 전체가 함락당한 것이 아니라 도읍인 평양 일대만 함락했을 뿐, 요동 지역의 고구려 성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한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과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과정을 보면 요동 지역에 촘촘하게 늘어선 방어선을 볼 수 있어 고구려를 가히 ‘성의 나라’로 불러도 틀리지 않다. 이러한 고구려 성의 특징은 크게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한 점, 그랭이 공법 등의 사례 ▲교통로 혹은 지정학적 요충지에 성을 쌓는 점 ▲방어를 위한 시설물, 대표적으로 치의 존재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연천 호로고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방어시설인 치. 자세히 보면 현무암으로 성돌을 쓴 것이 인상적이다.

연천 호로고루의 외형을 보면 역삼각형의 땅에 좌우절벽이 있어 이를 최대한 활용하고, 육로가 이어진 동쪽에 성벽을 쌓아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마치 중국 환인의 오녀산성의 사례와 유사한데, 자연적인 절벽을 이용하고 길이 통하는 지역에 성벽을 쌓은 것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또한 연천 호로고루가 위치한 지역은 걸어서도 강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물의 깊이가 얕고, 연천 호로고루를 지나면 장단과 개성으로 이어지는 최단거리라 교통로 상으로 중요한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연천 호로고루에서 바라본 임진강. 강이 얕아 걸어서도 강을 건널 수 있는 곳이다.

때문에 이곳을 호로탄(瓠蘆灘)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한진서의 <해동역사>를 보면 과거 칠중하(七重河)였던 곳으로, 유인궤가 강물을 건넌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발굴조사를 통해 성벽에서 방어시설인 치(雉)가 확인되었다. 이번에 고구려 비편이 확인된 백암성을 비롯해 고구려 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방어시설이다. 즉 연천 호로고루는 고구려 성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고구려 기와의 출토와 성의 축성에 현무암을 활용한 연천 호로고루

연천 호로고루의 발굴 과정에서 고구려의 북이 최초로 확인되어 주목된 바 있으며, 이와 함께 고구려 기와의 출토 역시 관심 있게 봐야 할 대목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고구려 기와가 출토된 점은 해당 성이 가지는 성격을 주목해볼 부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볼 사료는 <구당서>나 <신당서> 동이열전이다.

연천 호로고루에서 확인된 상고명 토기. 최초로 고구려 북이 확인되었다.

여기에는 고구려에서 기와 건물을 쓴 사례로 왕궁이나 관청, 사찰, 사당 등의 제한된 건물에만 사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고구려 기와의 출토는 호로고루의 성격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데, 최소한 이곳이 치소였거나 임진강 방어선의 중요한 목적을 가진 건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벽에서 바라본 내부 전경

한편 고구려 이후 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치며 장단현의 치소로 활용되었다. 또한 연천 호로고루 일대는 현무암 지대로, 과거 북한 지역인 오리산에서 화산이 분출해 지금의 한탄강과 임진강 일대에 그 흔적을 남겼으며, 이 때문에 주상절리를 비롯해 현무암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현무암을 활용해 성을 축성했던 고구려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성의 내부에서 바라본 동벽.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한 고구려 성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주변 민가의 담에 활용된 현무암. 사진만 봐서는 제주도로 착각할 정도로, 현무암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제까지 연천 호로고루를 세 번 방문했는데, 이전 두 번째의 방문까지 성의 외형만을 보았다면 이번 방문에서 눈에 띈 현무암 재질의 성벽과 지형지물을 활용한 고구려 성의 특징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새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의외로 나에게 깊은 여운을 준 연천 호로고루, 특히 노을이 지는 임진강의 모습은 연천 호로고루의 숨겨진 비경이라 할 만하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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